인호는 혜선이가 모태 신앙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심 궁금해 하면서도 종교에
관한 무식이 탈로 날까봐 물어보지도 못하고 억지로 감동한 표정을 지었고 가냘프고
가벼운 몸매에 교회까지 다니면 부지런 할 거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렇게 서로의 만남은 시작이 되었으나 헤어질 때까지 다음 약속을 정하지도 못하고
다방을 나오고 말았다.
정류장에서 혜선이가 타고 집에 돌아 갈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인호는 다시 만나자는
말도 꺼내지도 못하고 망설이기만 하다 혜선이가 타고 떠난 버스를 향해 어설프게 손만
흔들고 말았다.
아쉬운 마음으로 밤을 보내고 인호는 아침에 출근을 하여 의진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 밤에 의진이 혜선과 전화 통화를 하였다면 자신에 대한 느낌을 혜선은 말을 하였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의진은 정오가 가까워지자 건물 복도로 인호를 불러냈다.
"인호씨, 내 친구 어땠어요?"
"착하고 순진해 보이던데요."
"그것 뿐이었어요? 다시 만나기로 약속도 안 했다면서요?"
"입이 안 떨어져서 망설이다 그만……."
"남자 맞아요?"
"그럼, 내가 남자지 여자란 말 이예요?"
의진은 답답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길게 내 쉬더니 인호에게 물었다.
"내 친구가 맘에 들더냐구요?"
"싫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친구는 뭐래요?"
"내 친구도 싫지는 않은가 봐요. 몇 번은 더 만나보고 싶다고 하데요."
"그래요? 사실 나도 그런데……."
"그럼 남자가 먼저 만나자고 해야지요. 나이가 몇인데 일일이 내가 중계를 해 주어야
해요? 아무튼 이제 둘이서 알아서 해요."
그날 인호는 의진의 당돌한 다그침에 자신이 정말 숙맥처럼 느껴졌고 이성 친구를
사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며 용기도 있어야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인호는 퇴근 시간이 가깝도록 의진의 눈치를 살피다 용기를 내어 혜선에게 전화를
하였다.
수화기를 귀에 갖다대자 조용하고 조심스런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고 목소리의
주인공은 혜선임을 알 수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차인호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어제는 잘 들어가셨지요?"
"그럼요. 지금 바쁘시죠?"
"네, 조금요. 덕분에 어제 저도 즐거웠습니다."
인호가 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지 못하고 어색한 인사만 나누고 통화를 끝내자 인호의
모습을 곁눈질로 지켜보던 의진은 잔뜩 불만스런 표정으로 인호를 쳐다보았다.
순간, 인호는 찔끔하며 고개를 숙였고 의진은 슬며시 다가와 인호의 어깨를 꼬집으며
밖으로 나오라며 출입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