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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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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두마리


BY 프리즘 2001-05-27

담벼락사이의 보일러연료통...쌀쌀한 가을날씨를 조금은 막을 수 있는

그곳에 고양이가 한마리 누워있었다.






어린시절, 강원도 원주의 외가댁으로 방학때면 올라가 살았던 적이있다.

미용실을 하시는 바쁜 엄마의 일손을 덜어주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우리자매의 잡기중 하나인 한국무용때문에 학기내내 잠시도 공부할

틈없이 순회공연을 했었으므로 휴식이 절실히 필요했던 우리는 그렇게

방학만 되면 도망치듯 외가로 날아가곤 했었다.

외할머니는 젊었을 때부터 알아주던 미녀였고, 그 끼또한 유별나서

우리에겐 친구같은 존재였다.

맛나는 세끼밥은 물론이거니와, 저녁이면 틀어주시던 LP판의 음율이

아직도 귓가에 들릴만큼 너무나 좋았고, 흥이나면 외손녀들과의 한판

댄스도 불사하시던 외할머니는 정말 멋쟁이셨다.

아주 잘생긴 외할아버지 때문에도 우린 외가댁에 가는 것이 신나는

이벤트중 하나였다.






그렇게 미남미녀의 만남이지만 하늘이 도와주시지 않아서 그 두분은

자녀가 없으셨다. 그래서 6.25동란때 피난을 내려오던 진짜 외가에선

고명딸인 엄마를 그 집에 양녀로 남겨두시고 세 외삼촌만을 데리고

더 밑으로 피난을 가셨던 것이다.

그런 눈물나는 사연끝에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모녀관계가 탄생했고

피난중에 외삼촌들과의 연락은 두절되었으며,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서로를 찾겠다는 생각만 가득한 채 세월은 흘렀다.

나중에 KBS에서 대대적으로 방송했던 이산가족찾기 프로그램을 통해

서로 상봉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지만, 원주의 외할머니와 어릴때

부터 너무나 꿍짝맞던 엄마는 별로 기뻐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도리어 아빠가 날뛰셨을뿐...






각설하고, 그런 외조부모님이셨기에 아이들에 대한 감정이 남달랐고

양녀양자를 두신 형편이라 더많은 아이욕심을 동물들에게 돌리셔서

외가댁에는 언제나 동물이 천지였다.

저번 방학때는 두마리였던 커다란 황구가 이번 방학때는 다섯마리로

늘어나기 일쑤였고, 외할머니가 특히 이뻐하시는 고양이는 절대로

빠지지않았다.

심지어는 마당에 너구리까지 있을 정도였으니...

'독구'라고 불리던 황구는 분명 잡종이었을지나, 너무나 영특해서

동물을 무서워하는 나마저 그 독구를 데리고 강둑을 쫓아다닐 정도였고

나머지의 동물들은 울타리에 가두어져 있거나 줄에 매어있어서 우리와

별반 접촉이 없어 별다른 기억은 없다.

그런데...그 고양이가 문제였다.






외할머니가 해주시는 맛나는 밥상머리에선 언제나 고양이때문에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었고, 외할머니가 너무나 이뻐하시는 걸 알기때문에

드러내고 싫다는 내색도 하지 못하는 터였다.

그놈의 고양이는 밥상만 들어오면 그 밑에 들어가 누워있는게 도저히

말릴 수 없는 습성이었고, 우리는 고양이가 언제 내 다리를 머리털

쭈삣서도록 훑어내릴지 몰라 좌불안석 전전긍긍이었다.






언니와 나는 무섭지만 미워하던 그 고양이를 혼내주기로 작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