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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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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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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BY lotus17 2001-04-06

남편이 나갔다.

여느 아침과 마찬가지로 인사도 없이 현관문을 꽝 닫고 나가버렸다.

그녀는 신경질적인 남편의 현관문 닫는 소리가 나자마자 안방으로 달려가 재떨이 뚜껑을 열었다.

운이 좋은 아침이었다. 재떨이 속엔 길게 피운 꽁초 하나와 중간 정도 피우다 끈 꽁초 두개가 있었다.

컴 본체 전원과 모니터 전원을 누르고 커피 메이커에 물을 붓고 ON 스위치를 누른다.

이제 그녀만의 아침을 맞을 완벽한 준비가 된 셈이다. 특히나 긴 꽁초를 발견한 오늘 아침은 퍽이나 운이 좋은 아침인 것이다.

약간의 미열과 목의 통증이 느껴졌지만 감기 몸살 정도로 병원에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가디건을 하나 덧입고서 늘 하던 대로 신문을 읽고 무료 복권 번호를 찍고 메일을 확인하고 쇼핑몰에 들어가서 말그대로 아이 쇼핑을 했다.

목이 아파서인지 오늘은 담배맛이 썼다.
어떨 땐 담배에서 정액 냄새가 날 때가 있다. 순간 몸이 떨리는 걸 느끼지만 스스로 욕구 불만 때문은 절대 아니라고 도리질을 치곤 했다.

오늘은 금요일.. 최소한 12시엔 씻고 화장을 해야 한다.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은 동네 문화센터에 공짜로 영어 회화를 수강하러 가는 날이다. 몸이 약간 피곤했지만 그래도 가야 했다. 이런 사소한 이유로 오늘 하루 집에서 빈둥댄다면 그 후유증이 어떠할지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피부에 맞는 홋수가 떨어졌음에도 살만한 여유가 없어서 한단계 어두운 톤의 공짜로 받은 화운데이션 샘플을 얼굴에 찍어바르며 그녀는 문화센터에서 들은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대부분은 그녀보다 나이가 더 많은 아줌마들이었다. 심지어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계셨다. 미국에서 살다 온 아줌마, 캐나다에 이민갈 거라는 아줌마, 주말에 뭐했냐는 강사의 질문에 발리에 놀러갔다 왔다고 대답하는, 그녀보다 더 유창한 영어 실력을 구사하는 돈 많고 똑똑한 아줌마들, 아저씨들을 생각하면서 그녀는 순간적으로 엄마를 떠올렸다. 수십겹으로 주름진 얼굴, 늘 초라한 행색을 한, 어느 자리에서도 당당하지 못하고 주눅든 그녀의 엄마를 말이다.

그때였다.
때르르릉 때르르릉 때르르릉..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