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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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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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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BY 박혜영 2000-04-28

오늘도 그이는 그렇게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아이를 데리고 하루종일 종종거리며 그렇게 지내고 났더니 언젠가 처럼 왼쪽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 고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왼쪽 머리부터 왼쪽 눈에 이르기까지 쉴새없이 고통이 이어진다. 편두통인가?

내가 그렇게 아프다고 호소해도 그이는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늘도 너무 피곤하다며 재롱피는 아이에게 몇 번 눈길을 주더니 일찍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아이는 오늘도 어김없이 내 몫이 되고 말았다. 아이가 잠들때까지 또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까 생각했었는데 다행히도 아이는 일찍 잠들어 주었다. 분유를 타주니 몇 모금 빨다가 금방 뒤척뒤척하다 제 아빠의 입에 발을 얹어 놓고는 잠들어 버렸다.

오늘도 걱정거리가 생겼다. 며칠 전에 시어머님이 제주도로 놀러 가셨는데 그 공백을 내가 채워야 했었다. 어머님은 떠나면서 분명 오늘은 돌아오니 아버님의 식사는 챙겨드리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 하셨었다. 그러나 밤이 되어서야 어머님이 오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아버님은 혼자서 밥을 앉히고 다 되어서 막 드실 참이었던 모양이다. 이런 죄스러움을 어찌 할까 하다 결국 내 자신을 합리화 시키기로 했다. 어머님이 일찍 오시기로 하셨고 난 식사 준비를 안해도 된다고 하셨으니까...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얼마 후 시댁에 가면 두분은 분명 좋은 얼굴로 날 보시지는 않을 것이다. 가면 어쨌든 난 죄인이 될게 뻔하다. 언제나 처럼 대꾸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게 조금이라도 말을 덜 듣는 상책이란걸 알게 되었다.

(1)만남

그이와 난 6년전에 만났다. 그때는 내가 참 어릴때였다. 상고를 졸업하고 취업을 나간곳... 내가 있던 사무실 거래처이자 옆이던 곳에 그가 있었다. 그이는 그리 잘생기지도 않았었다. 키만 멀때같이 컸었고, 무척이나 삐쩍 말라 자칫 허약한 인상을 풍기기도 했었다.

그이에게 호감을 느끼기 시작한건 며칠 후 부터였다. 철없던 난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닌것에 내 마음을 모두 빼앗기고 말았다. 내 이름을 불러 주었다는 것. 내 이름을 기억해 주고 언제나 내 이름을 불러 주었다는 것에 매료되고 말았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닌것에...

그 후로 난 그에게 관심을 받기위해 노력했다. 무척이나 애쓴다고 썼었는데 갓20살이 된 나를 그가 여자로 봐주며 관심을 가져줄리는 없었다. 그러나 난 여자이고 싶었다. 그에게 있어 그냥 여자이고 싶었다. 그냥 새로 들어온 꼬맹이 신입사원이 아닌 여자로 보이고 싶었지만 내 노력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었다.

그러다 작은 기회를 찾게 되었다. 그가 일하는 사무실에 여직원이 필요했고, 내 친구를 끼워넣어 일명 정보원을 시키는 것이었다. 그것도 그리 효과적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가 나에대해 조금은 알게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 친구를 핑계삼아 그가 일하는 사무실에도 놀러가 보고, 괜히 서류를 갖다주는것도 내가 하려고 했었다. 그 친구랑은 쪽지 편지를 쓰면서 그 사람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대충 알게되고 있었다.

그와 내가 조금은 친해졌다고 느낄 무렵. 그에게 또다른 사랑이 있었음을 알았다. 나보다 한살 많았던 여자. 그리고 바로 내가 앉아있던 자리에 앉아 있던 여자. 난 묘한 질투심을 느꼈다. 그 사람이 그 여자 외에 다른 여자들이 있을것을 알면서도 유난히 그 여자에게만 적계심을 품게 되었다. 게다가 내가 일할수 있게 소개해준 언니 마저도 그에게 관심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 언니와 내 자리에 앉아있던 여자가 사돈지간이라는 묘한 관계에 휩쓸리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그가 그 여자와 헤어지게 된 동기는 이렇다. 아니 처음 만나게 된것 부터 말해야 할까? 여기엔 친한 사무실이 3군데가 있다. '진'과'일'과'화'라고 하겠다. 화는 내가 일하는 곳이고, 일은 그가 일하는 곳이다. 진에는 그의 친구가 있다. 그리고 그 언니가 일하는 곳은 '계'였다. 진과 계는 거래처 관계다. 내가 오기 전에 있던 여자... 그 여자도 그에게 관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진에 있던 그의 친구가 계의 언니를 소개해주려고 했었던 모양인데 그 여자가 그 사실을 알고 계의 언니에게 자신이 그를 좋아하고 있노라고 말했다고 했었다. 그래서 계의 언니와 진에 그 사람은 둘을 연결시켜 주었다.

둘은 잘 사귀었던것 같다. 그런데 지금도 있던 화의 그 과장... 그 과장이 그 풋내나는 그 여자를 좋아했던 모양이다. 아, 골치아프게 꼬이는 상황... 정말이지 짜증이 나려고 했다. 화의 과장은 어떻게든 그 둘을 말리고 싶었다. 그러다 화의 과장은 그 기회를 잡았다. 그와 그의 회사 동료, 진의 친구와 동료, 그리고 화의 과장이 술을 마실 기회가 있었는데 화의 과장이 그에게 그 여자와 결혼할 생각이냐구 물었다. 확인하고 싶은 기분이었겠지. 나라두 그랬을 거다.
그는 된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여자가 허락 한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고. 그 이야기는 곧 그 여자에게 전해졌다. 그것도 아주 이상하게... 이제 말이지만 화의 과장은 아주 능글맞다. 키도 무척이나 작고, 음식 욕심이 꽤 많은 사람이고, 배도 나왔다. 물론 노총각이고... 아마 그 여자와는 10살쯤 차이가 났을까?
다음날 화의 과장은 출근을 하자 마자 그 여자에게 말했다. '권과장하구 결혼한다며?'라구... 소문이란게 참 무섭다고 했던가? 세치의 혀로 그는 얼토당토않은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내가 들었다면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았을것 같은데 그 여자는 무척이나 기분이 나빴던 모양이다.
그 이후로 둘은 잘 만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여자는 화를 그만두게 되었고, 둘은 그대로 헤어지게 되었다. 어처구니 없이. 그 여자는 결혼할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해서 내가 화에 들어가게 되었다.

화에 다니면서 계의 언니가 그를 다시 그 여자와 만나게 해 주려고 노력하는 걸 알게 되었다. 난 계의 언니를 내 친구와 함께 만나 술을 마시며 얘길 해 보았다. 그러다 그 언니가 그를 좋아하고 있음을 알았다. 놀려주고 싶을만큼 그 언니도 미웠다. 그 언니가 자신을 더 알리기 위해 그 여자와 그를 다시 만나게 해주려는 속셈도 알았다. 다시 만나게 되면 쉽게 정리가 될 것이고 그 사이에 자기가 깨끗이 끼고 싶었겠지.

난 내 친구가 그를 좋아하고 있다고 말 해 보았다. 그와 나는 7살 차이가 났다. 내가 20, 그가 27일때 처음 만났으니까. 그러나 그 언니는 그의 나쁜점만 말하고 있었다. 내 친구가 그를 포기하도록... 하지만 어린마음에 포기했을까? 나로선 첫사랑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포기했을까? 다른 사람이라면 포기 했을까? 그러면서 그 언니는 그에게 자기가 필요한 사람이란걸 은근히 주입시키고 있었다. 그의 우유부단함을 잡을 사람도 자기라고... 가증스럽게도...

그 다음날 부터 난 그에게 적극적이 되기로 했다. 하지만 소심했던 나로선 적극적이래 봤자 별로 소득도 없었다. 그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가 오면 말 한마디 더 붙여보고, 어쩌다 같이 다닐 기회가 있으면 그의 옆자리를 내가 차지하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그땐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추석이나 설이되는 연휴때는 그에게 연락을 해 영화를 보는 시간도 갖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도 계의 언니가 그에게 계속 추파를 보내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난 그가 계의 언니를 무척이나 싫어한다는 걸 알고 안심하고 있었다.

그러다 난 화의 일에 실증이 났다. 그를 다시 못본다는 것은 견딜수 없었지만, 화의 공과장이나 사장의 밑에서 일하는것에 신물이 날 정도로 힘들었다. 그 둘은 나의 일하는 능력을 우대해 주고 있었지만 여전히 난 말단 사무여직원일 뿐이었고, 대우를 해준다고 해도 그리 크게 만족할 수는 없었다. 내 능력껏 대우를 받고 싶었는지, 아니면 쉬고 싶었는지를 모르겠다. 화를 그만두면서 난 퇴직금 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 사장은 퇴직금 5-60만원 주는것 조차도 아까워 했다. 그러나 난 아쉬워하지 않고 미련없이 훌훌 털어버렸다.

그 후로 그를 거의 만난 일이 없었다. 어쩌다 그와 연락이 닿아서 만나거나, 아니면 내가 화에 놀러갔다 잠깐 들러 만난게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