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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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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BY 김영숙 2000-05-24

아침을 여는 똑딱거림이 콘크리트 벽을 타고 전해진다.
서둘러 침대에서 빠져 나왔다. 그 소리는 나를 떠미는 손길처럼
들려온다. 아이들과 남편의 아침을 마련하기 위해 나는 또 하나의 똑딱임을 켜 콘크리트 속으로 흘려 보내야 한다.
이것이 생활이다. 작은 게으름과 종종 발걸음,그리고 두런대는 소리 소리들. 때로 그것은 유월 한더위 찌는 듯 한 폭염으로 다가올게고 때로 싱그러운 봄바람의 간들거림으로 찾아올게다.
오빠가 버리고 간 일상들은 어떤것이었을까?
아니, 오빠는 그것들을 버린것이 아니라 너무나 절실하게 그리워서 그 일상들로부터 숨고 싶었는지 모른다.
아침, 엷은 잠결 속으로 은은하게 풍기는 아내의 체취,서둘러 아침 식탁을 마련하기 위해 침대를 빠져나가며 일으키는 얇은 원피스의 팔락거림,물 흐르는 소리와 아이들을 재촉하는 아내의 높은 음 자리. 잊을 수가 없는 그 일상들이 어쩌면 오빠를 미치게 하였는지 모른다.
오빠가 선택한 삶은 아니었을게다. 그래, 우리 모두는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가도록 능력을 부여받지 못했다. 다만 주어지는 대로 살아 갈 뿐이다. 그렇다고 우리 자신에게는 잘못이 없는 것일까? 한 인간의 삶을 놓고 잘잘못을 따지는건 어처구니 없는 짓이다. 우리들의 삶은 그 자체 그대로 인정되어야 하는건 아닐까?
남아있는 우리들에게 이제 오빠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돌덩이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돌덩이인 채로 오빠를 가슴속에 묻어 두기란 쉽지 않았다.
오빠의 죽음을 이해도 용서도 하지 못한 채 가슴속에 쌓아 두는건 떠올리기도 싫은 사람의 손때묻은 물건을 보따리에 싸 두고 생각날 때마다 두고두고 펼쳐보는 것처럼 나를 힘들게 했다.
오빠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아니, 오빠가 남겨두고 간 일상들을 두려움없이 만나기 위해서라도 내 나름의 방식으로 오빠의 자살을 정리하여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