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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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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BY 백발마녀 2000-04-20

..삐리릭..
..삐리릭..
..이건..날카로운 빛줄기도..신경질적인 전화소리도 아니다.


두번째..수연과 재민의 만남.
그 만남에서 재민은 자신의 연락처를 적어주었다.
e-mail주소도 적어주었다.
수연도 자신의 e-mail주소를 적어주었다.
그러나..
연락처는..알려줄수 없었다.
불안함..불안함 때문이었다.

재민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두번째 만남에서 재민과 수연은 다시 계약을 했다.
그건, 짧은 시간동안 폭발할것 같은 마음의 안정을 위해
서로 필요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정말로,
정말로,
홀수날 11시 30분에..
그 대신 멜을 보내 아쉬움을 달래기로 했다.


수연에게 처음 짝수인 그날은 그야말로 컴퓨터와의 전쟁이었다.
분명 확인했는데도 다시 한번 더 ..
재민의 멜을 확인하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전략인양.
수십번을 확인해도 그때마다 가슴이 떨렸다.


갑자기 남편이 왔다.
주말에만 오던 남편.
시내 모 대학에 출장 나왔는데 다시 연구소로 들어가기 뭐해서 집으로 들어왔다한다.
전혀 연락도 없던 예기치 못한 상황이다.

그가 너무나 야속했다.
수연은 그저 멜을 확인해봐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컴퓨터로 TV를 보는 남편에게 괜히 신경질을 냈다.
남편이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갔다.
기회를 노린 매가 쥐를 낚아채듯 수연은 재빨리 컴퓨터앞에 앉아
멜을 확인했다.
남편 때문인지, 혹시나 하는 마음때문인지 손이 너무나 떨렸다.
아...
그렇게 극적으로 확인한 멜인데..
..없었다.
허탈하다.


수연은 오랜만의 평일의 잠자리를 원하는 남편을 밀어내고
불편해진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아..잠이 오지 않는다.
남편은 기분이 상했는지 돌아누워 자고있다.
수연은 지금 재민을 생각하고 있다.

..왜..
..혹시..나를 잊어버린건..
나를 그저 채팅에서 만난 어떤 아줌마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건 아닐까..
그랬는데..내가..너무..붙는것 같으니까..
..그래서..내가 ..싫어진걸까..
내가 너무 내 마음을 보인걸까..
..그러지 말껄..

괜히 후회된다.
두번의 채팅에서 실수한것이 무엇이었나..생각하려 애쓴다.

수연은 자신의 마음을 종잡을 수 없었다.
불안함보다는.
남편에 대한 미안함보다는.
이성으로 생각해야한다는 자책보다는.
그저..
그가 너무나 보고 싶다는 ..
온 피부에 약한 전기쇼크를 당하는 느낌.
..수연은..
거부할 수 없었다.



커피를 마시며 확인한 멜에 소식이 없자
약간의 오기가 생겼다.

말없이 남편을 보내고,
아이를 보내고,
청소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수연은 그런한 수고뒤에 온 평화로움을 즐기고 싶었다.
그의 편지로 평화로움에 기쁨을 얹고 싶었다.


수연의 오기가 결국 전화기를 들게 했다.
글은 그사람의 마음을 정확히 알 수 없다.
얼굴을 보면 더 정확하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목소리를 듣고 직접 대화해 보는것으로도 그사람의 진실을 어느정도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삐리릭..
첫번째 신호가 가자 수연은 그만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내가 지금 뭘 하는거야..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러나, 한번 마음먹은것이다.

..삐리릭..
..삐리릭..
차라리 받지 않았으면..했다.
..또독..
" ..네 "
...
" ..네, 여보세요.."
...
" 말씀하세요..."
...
탁!

아..더이상 수화기를 들고 있을 수 없었다.
재민의 목소리..
수연이 상상하던 목소리가 아니었다.

다정하고 장난기 많고 부드러운 남자.
수연이 자신의 나이를 스물아홉쯤으로 만드는 그 남자.
그 남자의 목소리..
..아..
너무나 굵고 남자다운 목소리였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목소리.
네. 여보세요..
네. 여보세요..
네. 여보세요..
수연에게 하루종일 환청이 들렸다.
네..여.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