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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많이 마시고 오라할 걸


BY 만석 2025-07-27

차라리 많이 마시고 오랄 걸 
 
영감이 오랜만에 제법 차려입고 나선다차려만 입으면 우리 신랑은 봐 줄만 하지(미안). 어딜 가냐 물으니 친구들 모임에 간단다미리 얘기하면 어디가 덧나나아무래도 말하다 죽은 귀신이 붙은 게야그런데 오늘따라 신발장에서 운동화를 내려놓는다
운동화를 신으려우새 것도 있는데 왜 그걸 신어요.” 
운동화를 들여다보니 겉의 하얀 테두리가 지저분하다게으른 마누라를 둔 티가 역력하다.
잠깐만요.”영감이 돌아서서 구두헤라를 찾는 사이에얼른 운동화를 들고 화장실로 내뺀다.
그냥 신어도 되.”더러운 신발 신고 나가서 마누라 욕 먹일 일 있수?
어디로 가요?”“오이도.” 그 친구들은 오이도 밖에 아는 곳이 없나 보다요새 고운 풍경이 지천인데 말이지.
 
당신이젠 날씨가 너무 더워서 술 많이 마시면 안돼요.”이르기는 했지만언제는 많이 마시라고 일러서 많이 마셨던가. ‘쇠귀에 경 읽기라는 것을 알면서도영감의 나서는 등 뒤에 대고 종알거린다그러고 보면 나도 참 못 났다
지난번처럼 사고치지 말고욧!”하지 못하고왜 공연히 추운날씨를 걸고 넘어지냐는 말씀이야.
내 영감은 참 나쁜 버릇이 하나 있다다른 남자들은 데리고 살아보지를 못해서 모르겠으나(ㅋㅋㅋ), 내 영감은 술에 약하다그런데 한 잔만 들어가면 자꾸만 더 마시려 하는 게 흠이다두 잔을 마시면 족하다 싶지만 세 잔을 마시려 하고세잔을 마시면 네 잔을 마시려 한다. ‘술이 술을 청 한다는 게 맞는 말이겠다와중에 다행인 것은 그래도 술주정이 없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나선 영감은 저녁 8시가 넘어도전화 한 통 없이 들어오질 않는다영감은 집을 나서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전화를 하는 법이 없었으렷다?! 나도 남자들 모임에 전화를 하기도 그렇고 해서먼저 전화를 걸지는 않는다아들딸들은 잠깐 사이에도 짝지들에게 전화를 주고받는다뭐가 그리 할 말이 많은지호호 하하 전화를 잘도 하더라만허긴우리는 무소식이 희소식이지지난 번 친구들 모임에서도 지하철 역사의 에스카레타에서 사고를 만나서경찰관 아저씨의 전화를 받았었으니까술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은 모임이니오늘도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았을까 걱정이다요새로 술친구를 만난 지가 오래되었으니까그래도 기분 좋게만 취해서 들어 왔음 좋겠구먼
 
걱정 중에 영감이 들어온다잽싸게 눈을 굴려 영감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핀다.
술 안 마셨네?!”반가운 말투로 다가서자 영감이 말한다.
술은커녕…. ”손에 들었던 걸 내게 건네고는안방으로 향하는 영감의 걸음걸이가 시원찮다.
술을 못 마셔서 병이 났나?”
돌아다보지도 않고 영감이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그래그래.”
옷을 벗고 바로 잠옷으로 입고 자리를 편다몸을 무겁게던지 듯 드러눕는다. ‘술은커녕이라고갑자기 겁이 난다병이 났나깔끔이가 씻지도 않고?
 
왜 그래?”
그냥 힘들어서저녁 안 먹어.”
저녁을 왜 안 먹어금새 될 텐데.”
생각 없어.”
술을 못 마셔서 그래?”
그래 그래.”조금은 짜증스러운가 보다
에구~. 그 나이에 술 못 마시면 간다는데차라리 많이 마시고 오라 할 걸 그랬나?’
 
차라리 많이 마시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