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시누이의 부부와 동행해서, 시부모님을 모신 양주의 추모공원에 다녀왔습니다.
철 없는 나를 성숙한 여인으로 만든 그녀들입니다. 내가 결혼할 때 초등학생이던 막내시누이도 육십을 넘어 칠순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시어머니 재주 좋아 하나같이 곱게 쓰다듬으시던 얼굴은 다 어디로 가고, 검버섯 피고 허리 굽은 초로의 할머니로 반기더이다. 댕기머리 길게 땋아 가즈런하던 시누이는, 파마머리에 성성한 반백도 이제는 숨기기 힘이 든다고 꼴적은 내 모양을 따라 쫒아오더이다.
어느새 옆지기를 잃은 애뜻한 시누이도 있었고, 팔순을 눈 앞에 둔 허리 굽은 시누이도 있었구먼요. 그러나 만장같이 넓은 가슴을 가진 시누이는 없겠는지요. 댕기머리 땋아 늘어뜨렸던 시누이는 어느새 무릎이 고장이 났다면서도, 아직도 날 불러 새언니라며 내 손을 잡아 빈자리에 앉히더이다.
시집살이 되다고 투정하는 이 늦둥이 막내딸은, 밥 한 번 시켜보지도 않고 겁도 없이 다섯 시누이 사이에 밀어넣었느냐고 어미에게 발버둥을 쳤지요. 종가집이 다 뭐냐고 물어내라는 악다구니에, 배 불리 잘 먹고 살라고 땅부자란 소문에 허락했노라는 엄마도 울고 나도 울었더이다.
시누이는 단둘뿐이라고 손가락 접어보이며 속이던 중매쟁이 체면을 보아, 그래도 모자라는 척 주저 앉아 기를 쓰고 내 아이들 서럽게 만들지 않으려고 오 십년을 버텼구먼요. 이제 지나고보니 그 다섯 시누이도 그리 모질지도, 억새지도 못했더라는 말씀이지요.
이제는 그녀들이 하나같이 귀하기만 합니다. '옛날이야기로 그땐 그랬지.' 하고 웃어보입니다.
헤어지는 시간이 야속해서 두 손을 마주잡으니, 그녀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내 맘도 따라 아팠지요.
"언니. 건강하세요." 합창소리에 마주앉은 낯선 얼굴들이 인심좋은 미소를 건네더이다.
6. 13. 시부모님을 모신 추모공원을 다녀와서.
그린플라워님.
예. 맞습니다 맞고요.
지금만 같으면 좀 더 어른스럽게 세련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싶어요. 가장 부딪치기 잘하고 내게 라이벌 의식을 많이 가졌던 시누이가, 일찌기 하늘나라로 가서 더 가슴이 아파요. 좀 더 잘 해 주지 못한 것이 지금도 맘에 짠합니다. 대체로 시누이들이 선한 사람들입니다. 잘 다둑이고 살지 못한 못난 만석이는 지금도 후회되는 일이 많습니다. 지금만 같으면 더 잘 좀 해 줄 것을...ㅜㅜ.
댓글 고맙습니다^^
저는 어머님 계시는 동안 잘하다가 이제는 저도 체력적으로 딸리고
마음도 서서히 없어지고,,그래서 지금은 시누이 형님들과 그냥 저냥 일 있을때만 연락하고 지내고 있어요...제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데 몸과 마음이 따라주지 않아요,,,ㅠㅠ,,소나기가 오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행복한 사람님.
저희 올케가 만석이 칭찬을 그렇게 했다네요. 올케가 시누이 칭찬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올케의 친구가 중매를 섰다고 합니다. 세상에나~. 잘 거니리고 살 거라했다네요. 그래서 중매쟁이를 제가 많이 미워했습니다. 시댁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잘 풀어가며 살았습니다. 옛날에는 농사가 많으면 부자라했지요. 그래서 경제적으로 부담을 갖지 않으니 그나마 헤쳐나온 것 같습니다. 시누이들과는 그냥저냥 지낼 수 있다면 괜찮게 사신 겁니다 ㅎㅎㅎ. 성질 고약한 비가 한 줄기 퍼부을 것 같습니다. 환절기 감기가 독합니다. 조심하시고요.
늘 댓글 주셔서 이젠 뭐 맡겨놓은 것 같이 님을 기다립니다.
건강하세여~^^
지금 생각하면 꿈을 꾸었었지 싶어요.
일 대 일로 마주 앉으면 그럴 수 없이 순한 양이지만 둘만 모이면 막강한 힘을 가지더군요. 그래도 말이 많은 사람들은 아니었지 싶어요. 시어머님이 교통정리를 잘하신 것 같아요. 지금은 친구같고 동생같아서 그들이 행복한 노후를 보내도록 기도하게 됩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리 못된 시누이들은 아니었다고 생각하게 되고 혹 서운했던 일들도 추억으로 묻어두게 되었지요.
댓글 고맙습니다. 오늘도 해피하세요^^
존경합니다.
저는 시누이는 2명이고 시고모가 5영인데 고모님 두분이 생존해계시면서 저로선 힘들었답니다
시어머니께서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 분들 자기 오빠라고 시아버지께 수시로 드나 들며 여기에 적기 어려운 피해를 입었답니다.우울증까지 왔고, 시부님 돌아가시니 안 오시더군요
원더님.
안녕하세요. 우리 처음이지요? 자주 뵐 수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시고모도 시누이 못지 않다고들 하더라구요. 원더님도 힘든 시집살이 하셨던 듯. 이젠 다 이기고 났으니 좋은 세상만 맞으시기 바랍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우리 자주 뵈요~^^
에고
그래도 잘 인내하셨죠
그당시야 일하는 며느리라해도 며느리 도리는 제사등 큰일에는 많이 힘드셨겠어요
저도 마찬가지입장이여서 일하는 전 당연히 가야하지만 일안하던 동서는 안하는 안와도 그만이었죠
남편은: 시가만감 가방던지고 나가서 잘때나 들어오고 전: 혼자서 눈치보며 서툰일하고 애는 칭얼되는데 시어머님이 애울면 보라했지만 일손이 딸랑 저랑 시어머니뿐인데 어찌 그런가요
전만 일곱여덟광주리를 붙었죠
그때는오는손님들 다 싸주었으니까요
나이든 이젠 인사가 건강하세요
이리되네요
세번다님.
울타리 너머에 시작은댁이 있었는데 같은 식구로 식사도 모두 모여하고 그런데 거기도 사촌시누이가 넷이었고 도련님이 넷이더군요. 지금 다시 그 시집 살라고 하면 못할 것 같아요.
시골 출신 남편들은 다 그랬나 봐요. 우리 영감도 그러더라구요. 비포장 도로로 시댁 다니느라고 아이를 셋이나 자연유산하고 네 번째 우리 큰딸 갖고 나았네요. 그래도 다음에는 아기 가지면 오지말라고 하지 않으시더라고요. 시부모님이 끔찍히도 사랑을 주셨기에 그 시댁을 살아냈습니다.
참 옛날 이야기네요.
댓글 고맙습니다^^
지나고 나서 그땐 그랬지라고 추억할 수 있어서 다행인것 같아요..
ㅣ
토마토님.
아득한 옛날이야기 같지요. 생각하면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시집살이인데 그래도 새록새록 추억이라며 더듬어 본답니다.
그래도 모두 모이면 대장 대우는 받았어요. 책임만 크고 힘든 고역이었지만... 아마 시댁 어른들이 이 글을 보시면 너는 그리 말할 수 없다고 하시겠지요. 종부가 무슨 큰 벼슬인양 ㅎㅎㅎ.
고운꿈 꾸소서.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