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 전에는 알람이 울려도 기상이 어려운게 게으른 나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7시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작은 아들의 둘째가 심한 감기로 열이 39도를 너머까지 오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잠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후엔 39.2도 라고 하더니, 병원에 다녀오고는 더 올랐다는 것이다.
이런 이런... '조금 찬 물수건으로 몸을 좀 닦아주어라.'
조심스럽게 문자를 보낸다. 아이가 자고있는지 문자로 아들의 답이 온다.
'병원에서 가져온 해열제 금방 먹였어요..'
돕지도 못하면서 멀리 앉아서 문자질만 자꾸 하기도 눈치스럽다. 내외가 지금쯤 아기를 데리고얼마나 노심초사할 텐데 말이지.
나는 머리 속에 그려지는 그림으로 소설을 쓴다.
보나마나 내 손주는 축 늘어졌을 것이고 애비가 안고서 안절부절을 하지 못하고 있겠다.
나도 그리 격지 않았던가. 아기가 아프면 안절부절을 못하다가, 부부는 싸움을 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아들은 몰라도, 며느님은 시어머니의 걱정이 잔소리로 들릴 수도 있기 마련이다.
혹시 열이 내렸다는 소식이 오나 하고, 늦은 저녁까지 전화를 해 보고 싶은 걸 참으려니 좀이 쑤신다. 10시가 넘어가자 문자를 보내본다.
'아기가 열은 좀 내렸느냐?' 한 시간은 지난 것 같은데 답이 없다. 아예 문자를 들여다보지도 않는다. 애를 쓰다가 잠이 든 모양이다.
그래도 궁금해서 그냥은 잠을 청하지 못하겠다. 아가가 열이 좀 내렸는가 물으니,
'열은 좀 내리고 이제 겨우 잠이 들었어요. 콧물은 아직 줄줄요 ㅜㅜ.'
'아기가 열이 내려도 내일 우리 집에 오지 말아라. 엄마도 감기기가 좀 있다.'
'ㅜㅜ' 아들에게서 문자가 온다. 오늘 그들이 내 집에 오기로 선약이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열만 내리면 우선은 맘이 놓인다. 아기들은 앓고 나면 부쩍 큰단다. 자라려고 앓는 게야.
앓고나면 예쁜짓도 더 하고.' 그도 아비의 마음이니 걱정하느라고 잠이 오겠는가. 에미의 마음으로 위로를 한다. 애비는 제 아들 걱정에 애를 썼으니, 내 아들도 잠을 좀 자게 해야지.
'엊그제 손주만하던 아들이 벌써 두 아이의 아비가 되었으니, 이제쯤 애미의 맘을 알아줄까?'
그래서 아침잠이 많은 나도 다른 날보다 더 일찍 잠이 깬 게다. 아가가 잘 잤는지 궁금한데 시간이 너무 이르다. 아들며느님도 오늘 쯤은 늦잠을 잘 테니까. 나는 언제나 며느님이 아들보다 더 어렵더라는 말씀이야. 혹시 며느님이 소외감이 들으려나? 아들은 내가 보낸 문자를 아직 확인도 하지 않았다. 에구~. 에미가 궁금할 생각도 못하나ㅜㅜ. 정오가 다가오니 이젠 일어났겠지.
'에미야. 아가가 밤에 잘 잤니? 보채서 너희들도 잠을 못 자지 않았나?
오빠가 문자 확인을 하지 않아서... 난 걱정스러운데 말이다.'
잽싸게 답이 온다.
'열은 내렸구요. 아직 기침이랑 코가 흘러요'
'애 쓰는구나. 열이 내렸음 우선 안심이다.'
'네. 너무 걱정 마세요.'
'애기가 아프면 에미가 고생이지. 힘들면 오빠한테 일러서, 배달 시키고 끼니들 꼭 챙겨먹어라.'
'예. 어머니~^^'
좀 있으려니 폰이 운다. 막내딸이다. 비가 내리니 오늘 오지 말라고 문자를 보냈더니....
"엄마. 나, 오늘 엄마한테 간다고 안 그랬는데요."
"네가 주말에......"
"에구 엄마. 주말 지나서 시간을 내 본다고 그랬지요. ㅎㅎㅎ."
"그랬어? 난 주말에 온다는 줄 알고, 오늘 비도 오고 찻길이 미끄러우니 다음에 오라고 했지."
"어머나. 오늘 비가 안 왔으면 우리 엄마 하루 종일 나 기다리셨겠네 ㅎㅎㅎ."
"그랬겠구나. ㅋㅋㅋ." 그래도 지금 감기를 앓는 중이라는 소리는 못했다.
아이들을 만날 것이라는 기대가 깡그리 무너진 것만 섭섭하다.
그나저나 딸 네 두 아들 네 치른다고, 큰 손님 치른다고 장을 잔뜩 봐다 놨으니 다 어쩐다?
이래 저래 두 늙은이만 살찌게 생겼네?!
아랫층만 불러? 아랫층만 부르는 건 더 조심스럽다. 설거지라도 시켜야 하니. 말린다고 안 할 사람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