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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가 되다


BY 귀부인 2022-04-07

가이드가 되다(와디럼 캠프)

 스페인에서 요르단으로 올 때 요르단이 어떤 나라 인지에 대해 아는것 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정확히 어디에 붙어 있는 나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중동에 있는, 작고 가난한 나라 라는 것이 내가 아는 전부 였다. 작은 아들 새학기에 맞춰 수도 암만에 도착한 것이 11년 전 이다.  20대 후반 신혼 시절을 보낸 두바이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중동은 중동 인지라 9월인데도 한낮엔 상당히 뜨거웠다. 그러나 해가 진 이후엔 제법 시원하니 한국의 가을 날 같았다.
 
 짐 정리 하느라 정신없는 며칠이 지나고 암만 시내를 둘러 보았다. 어찌나 황량하던지, 내가 이곳에 정 붙이고 살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낯선 복장의 사람들과 언어, 모래 빛깔 건물과, 먼지 뒤집어 쓴 생기 잃은 나무들, 삭막한 도시 풍경에 정이 가지 않았다. 누가 그러라 한 것도 아닌데 마치 유럽에서 유배당한  사람인냥 우울하게 집안에서 머무는 날이 많았다. 1년의 세월을 이 땅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러다 교회에서 한 달에 한 번 가는 성지 순례를 통하여 이 나라가 구약 성경의 보고라는 걸 알게 되었다. 성지순례라면 이스라엘만 생각하던 나에게 요르단 에서의 성지 순례는 생각지도 못한 큰 선물이 되었다. 어영부영 요르단살이 5년이 다 되어갈 즈음, 이렇게 생각 없이 지내다 보면 떠날 때 후회가 될 것 같았다. 성경 내용과 관련된 성지를 좀 더 공부를 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이드가 되다 (손님을 기다리는 당나귀)

그러기 위해 성지순례 가이드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기까지 또 1년의 세월이 흘렀다. 성지순례 가이드는 선교사님이나  목사님이(평신도 분들도 계시지만) 하고 계셨기 때문에 선뜻 나서기가 왠지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이상 미루면 아무것도 안될 것 같아 여행사 사장님을 찾아갔다. 기업체 직원 부인이 성지순례 가이드를 하겠다 제 발로 찾아 온 경우는 처음 인지라 놀래셨지만 선뜻 기회가 되면 해 보라고 하셨다.
 
 그러나 여러 우여곡절 끝에 여행사를 찾아간 지 1년 이후에나 가이드로서의 첫 발을 내 딛을 수 있었다. 영성이 깊은 목사님, 선교사님들 사이에서 일개 평신도인 내가, 평생 소원하며 큰 기대를 갖고 오시는 순례객들을 실망 시킬까 겁이 났다. 딱히 메뉴얼이 있는 것도,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다 보니 혼자 자료를 찾아 공부하고 성지 관련 성경 부분은 읽고 또 읽었다. 유적지의 현지 가이드들에게 돈을 주고 직접 답사 하기를 여러 번, 맨 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한편으론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왜 가이드를 한다고 했나 후회하기도 했지만 좋은 가이드가 되기 위해 열심히 준비를 했다.
 
  드디어 성지 순례객을 처음으로 맞게 된 날, 긴장감으로 북치듯 두근 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국경으로 갔다. 성지 순례객들의 경우 요르단 단독으로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스라엘에서 일정 기간의 순례 후 요르단으로 넘어와 짧게는  2박 3일, 길게는  5박 6일 정도 머무르다 다시 이스라엘로 넘어간다. 내가 맞게 된 첫 팀은 신부님과 인솔자를 포함 25명의 순례객들이었다. 초짜임이 들킬까 일부러 과장된 말과 행동을 했지만, 노련한 인솔자의 눈을 가릴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감사하게도 내가 너무나 진지한데다,  긴장한 것이 안쓰러웠는지 순례객들이 사진 찍느라 분주한 사이 내 곁으로 살짝 다가와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해 주었다.


가이드가 되다  (3월의 광야)

2박 3일간 그 분들과 함께하며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매 순간 어찌나 긴장을 하고 있었던지 먹은 음식 소화도 못시키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 얼굴이 반 쪽이 되었다. 다행이 큰 사고나 컴플레인 없이 요르단 일정을 마치고 요르단 국경에서 이스라엘로 무사히 보내 드리고 긴장이 풀려 다리가 후들거렸다.
 
지금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분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내가 준비하고 공부한 것의 절반도 제대로 설명 드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많은 팀들을 가이드 하면서 농담도 던지는 여유를 부릴 정도가 되었지만, 매번 새로운 순례객을 맞을 때마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려 노력했다.
 
 요즘 코로나로 인하여 일을 하지 못하는 관광 버스 운전기사들, 식당, 현지 가이드, 호텔 종사자들 모두 어떻게 지내고 있나 걱정이 된다.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까지 성지 순례객들 뿐만 아니라 일반 관광객들까지 폭발적으로 늘어나 요르단의 관광업에 종사 하는 사람들은 호텔이며 차량 등 엄청난 투자를 했었는데....
 
하루 빨리 코로나로 부터 안전해져서 국제 간 이동이 원활해 지면 좋겠다.


가이드가 되다(와디럼 - 지혜의 일곱 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