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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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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씨도둑


BY 박예천 2021-11-09


오가며 마주치는 그 집 뒤란은 길가로 길게 이어져있다. 

계절마다 색을 달리하는 꽃들이 넘치게 핀다. 

자연스럽게 자동차 가속페달을 밟던 발을 떼어가며 속도를 줄이게 된다. 

차창 밖으로 꽃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저건, 데이지! 이건 뭐였더라?

매일 일정한 독백이 이어진다. 

 

어느 날 오전 그 집 앞을 지나가려는데 주황빛과 노랑빛이 섞인 금송화가 

자잘하게 피어있다. 

군데군데 마른 씨앗을 곧 털어버릴 듯 매달고 있다. 

길가에 비상등을 켜놓고 차에서 내렸다. 

바스락바스락 손안에 넣기만 해도 톡톡 떨어진다. 

주인이라도 볼까. 

서둘러 한주먹 움켜쥐고 집으로 향했다. 

다시 나서는 길엔 비닐봉지라도 챙겨 나올 요량이었다. 

꽃씨 욕심이 생긴 것이다. 

우리마당가 잡풀이 무성해지는 가장자리마다 뿌려놓고, 

너른 자리거나 가파른 언덕마다 노랗게 피어있으라고 

씨앗들에게 당부도 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씨앗도둑이 분명하다. 

주인에게 허락을 구했거나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음날 같은 시간에 그 집 앞을 지나치려는데,

앗! 이럴 수가. 

꽃들이 전부 사라졌다. 

마치 애초부터 빈 땅이었던 것처럼 말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구시렁구시렁 그 순간부터 주인을 향한 거친 욕을 해댔다. 

마치 미리 주문이라도 해 놓은 씨앗을 전달받지 못한 사람처럼.

어쩌면 그럴 수가 있느냐, 그까짓 양을 가져간다고 단숨에 다 뽑아버리다니.

안채에 몰래 숨어 창밖으로 나의 씨앗탈취(?) 만행을 지켜보기라도 한 것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갖가지 상상이 머릿속에서 똬리를 틀다가

너풀너풀 연날리기를 하기도 하며 집주인을 향해 세치 혀로 날을 세우고 중얼거렸다. 

 

오후 퇴근길에 습관처럼 힐끔 그 집 화단 쪽으로 나의 시선이 닿는다. 

한 쪽 구석에 마른 금송화 무더기가 꼴짐처럼 쌓여있다. 

아직도   씨앗주머니를 다닥다닥 달고 말이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용기를 내어 안채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저쪽 마을회관 옆에 사는 사람인데요.....”를 시작으로 

꽃씨 좀 얻어갈 수 있겠느냐 물었다. 

육십 중반쯤 되었을까.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 여인.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해바라기였다. 

댓돌 옆이며 마당가장자리마다 아기자기한 꽃들로 가득하다. 

“그럼요! 마음껏 받아가세요. 꽃은 나누면 더 예쁘죠. 제가 같이 받아드릴까요?

화단정리 좀 하느라 다 뽑았어요. 참! 이것도 몇 포기 가져가세요. 데이지인데....

옆에 쪼그려 앉아 꽃대를 꺾어 내 비닐봉지에 보태는 아낙.

입에 게거품을 물고 욕을 해댔던 하루 전 내 모습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집에 돌아와 신문지를 펼쳐놓고 씨앗무더기를 널어놓으니 꽤 많다. 

내년에 온 사방 샛노랗게 피어 내 됨됨이를 놀려댈 금송화들의 재잘거림이 

벌써부터 귓가에 쟁쟁하게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