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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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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 집을 차려도


BY 귀부인 2021-10-20

 "아, 뭐더러 죽을 쒔니이, 힘들게에. 그냥 밥 한 숟깔 떠먹으면 고만인디이."

말씀은 그리 하셔도 죽 한 대접을 순식간에 깨끗이 다 비우셨다.

"아이고, 맛있게 잘 먹었다. 고맙다. 내가 니 덕에 호강한다."

" 어머니두 차암, 죽 한 그릇에 호강한다는 말씀은 아닌 것 같아요."

"아, 죽 쑤기가 얼마나 번거러운디. 고맙지이"

매일 아침마다 반복하는 어머니와의 대화이다. 



   노인을 모시고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특히 끼니마다 따뜻한 음식을 해드리는 게 쉽지 않다. 그나마 평일 낮에는 

노인돌봄센터에 가시니 아침, 저녁만 차려 드리면 되지만, 

주말 이틀은 하루 세 끼씩 때 맞춰 음식을 차리는 게 참 번거롭게 느껴진다.  

혼자라면 간단하게 먹어도 되고, 먹기 싫으면 굶어도 되고,시간도 들쭉날쭉  

먹고 싶은 시간에 먹으면 된다. 하지만 어머니를 위해선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어야 하고 음식도 결코 간단하게 차릴 수 가 없다. 

그래도 이젠  익숙해 졌다.


그런데  아직 적응을 하지 못한 것이 있다. 바로 음식 간을 맞추는 일이다. 

나는  싱겁게 먹는데 반해 어머니는 짜게 드시는 편이다. 

처음엔  건강을 위한다는 생각에 간을 싱겁게 했다. 

어머니는 음식이 짜다 달다 싱겁다 아무런 잔소리를 하지 않는 대신, 

반찬이나 국 그릇을 숟가락으로 아주 살짝 밀어내셨다.  

간이 맞지 않는다는 신호였다. 



 소금 좀 드릴까요? 하고 물어보면 아녀 괜찮어, 먹는다 하시면서 

한 두 숟갈 뜨시다 두 번 다시 손도 대지 않으셨다.나는 뭐이고 다 잘 먹는다, 

못 먹는 거 없어 하고 입버릇처럼 말씀 하시지만, 고기도 별로 안 좋아 하고 

야채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과일도 가려 드신다. 은근히 입맛이 까다로우시다.

그나마  생선 요리는 좋아하신다. 



  그런데 주부 경력 30년 가까이 되니 어디 가서 음식 솜씨 없다는 말은 

안 듣지만, 생선 요리엔 좀 자신이 없다. 어릴 때 내륙 지방에서 살아 생선이 

귀한 지역에서 자란 탓도 있고, 오랜 해외 생활로 우리나라만큼 해산물이 

풍부한 지역에 살지 않아 다양한 생선 요리를 접하지 못한 탓도 있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잘 먹는다 는 데 아무래도 생선을 안 먹어 버릇 하다 

보니 나는 생선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어머니 좋아하시는 생선 찌개를 자주 해 드리려 노력한다. 

그리고 찌개 간은 자주 어머니께 부탁을 드린다. 재료가 준비된 냄비에 

어머니는 과장을 조금 보태 간장을 콸콸 쏟아 부으신다. 그리고 미원을 듬뿍 

넣으신다. 아, 짜서 저걸 어떻게 먹나 싶지만, 간장과 미원의 절묘한 조화로 

감칠맛 나게 짠 맛이 입에 착 달라 붙는다. 당연히 어머니는 맛있게 잘 드신다.



"우리 시어머니 연세도 많으신데 너무 짜게 드시고, 음식마다 미원을 듬뿍 

넣는데 어떡하죠?"

"아유, 걱정 마. 내가 지금 돌보는 할머니는 92 센데 거짓말 좀 보태 미원을 

한 숟갈 씩 퍼 넣는다. 그래도 장수하시잖아. 노인들은 안 드시면 오히려 

그게 걱정이지. 못 드셔서 기운 없어 넘어지기라도 해 봐. 그게 더 큰 일이지. 

소금에 밥 비벼 드실 정도 아니면 괜찮아. 미원 좀 넣더라도 맛있게 드시면 돼.

니가 다른 사람에 비해 너무 싱겁게 먹고, 너 네 시어머니가 보통 사람 입맛인지 

어떻게 알아? 우리나라 사람들 미원에 너무 민감한 것 같아. 무조건 어머니 

입맛에 맞춰서 맛있게 드시게 해."



  요양보호사 경력 20년 차 지인의 말도 일리는 있다 싶은 생각이 든다.

싱겁게 해드리면 드시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요즘은 모든 음식을 

내 기준으로 좀 과하게 소금이나 간장을 넣고 미원으로 간을 맞추는데 

어느 땐 짜고 어느 땐 미원 맛이 강하다. 어머니처럼 대충 해도 간이 잘 맞는 

간장(소금)과, 미원과, 물의 절묘한 비율(손맛이라 하자)을 아직 찾지 못했다. 

내겐 익숙한 맛이 아니라 시간이 좀 걸릴 듯 하다.



   그렇지만 어머님 입맛을 딱 맞추는 음식이 있다. 바로 죽이다. 

아침이면 입맛  없다 시며  국도 잘 안 드시고, 반찬엔 손 하나 대지 않고 

보리차에 물 말아 드시니 난감했다. 그래서 어차피 국 끓이고 반찬 이것저것 

해봐야 안 드실 것 같아 매일 아침에는 죽을 드린지 두 달이 넘었다. 호박죽, 

팥죽, 잣 죽, 조갯살 죽, 야채죽,  쇠고기죽 등 아침마다 죽을 끓이다 보니

 죽의 달인이 된 것 같다.



  호박죽과 팥죽은 소금과 설탕의 비율이 중요한데 그 절묘한 비율(손맛)을 

찾은 것 같다. 다른 죽 들은 소금으로만 간을 하는데 내 입맛엔 조금 짜고, 

어머니 입맛엔 조금 싱거운 비율도 찾았다. 어떤 죽을 끓이던 어머니는 

한 대접을 드신다. 허겁지겁 깨끗이 비우신다. 그리고 맛있게 잘 먹었다는 

인사를 잊지 않으신다.



  아무래도 죽을 쑤려면 불 앞에 오래 서 있어야 하고 재료 손질도 번거롭기는 

하지만 어머님 잘 드시고, 아침에 여러 반찬 없이 간단하게 상을 차려도 되니 

오히려 편하다. 어머님 덕분에 그럴 일 없겠지만 죽 집을 차리면 맛 없어 

손님 안 온다 소리는 듣지 않을 것 같다.



기억은 잃어가고 계시지만 아직 입맛을 잃지 않으신 어머님께 죽을 끓여 드릴 

날도 며칠 남지 않았다. 지난 3개월의 시간이 길게도, 짧게도 느껴진다. 

내년엔  어떤 기억의 상태이실지.....

내년에도 입맛은 잃지 않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