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도 흥분하는 날이 있다
“때려. 때려! 한 방 쳐라~!”
안방이 시끄러워진 걸 보니, 손주 녀석이 타석에 선 모양이다. 컴 앞에 앉았던 나는 반사적으로 안방을 향해 내 달린다. 아니나 달라. 손주 녀석이 방망이를 높이 들고, 상대편의 투수를 날려 보낼 듯이 노려보고 섰다.
"딱~!"타석의 내 손주는 드디어 온 몸을 비틀어 방망이를 휘둘렀다.
“넘어간~다. 넘어간~다. 에~이." 공은 포물선을 그리며 높이 그리고 멀리 시원스럽게 아취를 그린다.
날아가던 공이 속도를 급자기 줄이고, 야속하게도 펜스의 정 중앙을 맞고 다시 경기장으로 들어온다.
“2루타. 2루타. 아~. 5cm만 더 뻗었으면 홈런인데. 아~ 아깝다.”
영감은 분해서 못 견디겠다는 표정이다. 어지간해서는 흥분을 하지 않는 위인인데 말이다.
“저 선수가 187에 100kg이 넘는데, 힘도 좋고 걸음도 무척 빨라요.” 중계석의 해설자가 내 손주를 이렇게 소개할 때면 내 어깨도 따라서 으쓱거린다. 암. 누구 손주인데. 그 녀석은 내 친정 둘째 오빠의 손주다. 몸도 좋은 녀석이 얼굴도 빼어나게 잘 생겼다.(내 자식이라면 이렇게 자랑 못하지. 사실을 말하자면, 내 자식은 더 높은 고지에 있는데도 입을 떼지 못하고 있다. 욕먹을라 싶어서.)
“뛰어. 뛰어. 스라이딩~!”
영감은 경기장에서 도루를 하는 손주에게, 알아들으라는 듯 소리를 친다. 상대 투수의 실투로 공이 캣쳐의 그로브를 지나 저만큼 굴러가자, 영감이 손을 돌리며 흥분을 한다. 2루에 있던 손주 녀석이 여유 있게 3루에 진입한다. 그 녀석은 아마 100m를 11초에 뛴다지?!
지금 스코어는 5 : 3. 손주 네 팀이 지고 있다. 뒷 타자가 보기 좋게 2루타만 때려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그냥 안타 하나만 쳐도 50%의 승산은 있지 않은가 말이다. 하하하. 이 손주가 출전하는 날이면, 우리 안방은 작은 야구장이 된다. 경기장엔 무관중(無觀衆)이지만 우리 안방엔 적어도, 아래층 식구들이 올라오는 날에는 5명의 열성 펜은 유지하는데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