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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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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교 가는 길


BY -들국화 2020-07-07

1. 학교 가는 길

흰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이면 항상 학교 가는 길 멀리 안 보이는 곳까지 아침 일찍 수북이 쌓인 눈에 발목이 빠질 새라 싸리비를 좌우로 내둘러 제설작업을 해주신 아버지 덕분(여름이면 풀섶의 이슬을 미리 털어 주심)에 한참을 편안하게 걷다가 뽀드득 뽀드득 소리 나는 눈 쌓인 길을 지나면 다락마을이 나오고 마을 길 사이사이로 벗어나면 부용(*)산 우거진 나뭇가지로 욕심껏 팔 벌려 흰 눈을 끌어 안으려고 몸부림 치다가 그만 가지가 부러지고 마는 아름들이 노송들을 지난다뽀드득 소리가 즐거워 너도 나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참을 술 취한 걸음 걷다 보면 어느새 소리 죽여 까치발로 살금살금 걸어야 하는 운동장이 넓은 가시철망 울타리의 고아원을 지난다세상에서 소외 받은 어린이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서 왠지 그들의 눈에는 무서운 서릿발이 잠들어 있는 듯하여 옆 눈으로 흘깃 바라볼 뿐 감히 정면으로 바라 볼 용기를 내지 못했다빠른 걸음으로 도망치듯 걷다 보면 어느새 철탑 위 커다란 쇠종이 금방이라도 땡그렁 거리는 것 같아 움추린 마음을 녹여주던 교회당을 지나고 드디어 부용초등학교가 우리를 반긴다

반가 후 집에 올 때에는 조금은 돌아 가는 길을 택한다학교 후문을 빠져 나와 까치고을 길로 접어들면 손님 맞이 까치들이 쌍 지어 울음으로 맞아주고 복숭아 과수원 아카시아나무 울타리를 끼고 사뿐사뿐 걷다 보면 꺾어진 나뭇가지가 땅에 뒹굴다 아카시아 나무 가시가 발바닥을 노크한다덥석 주저 앉아 고사리 손으로 손톱 날 파르르 세워 가차없이 제거하고 룰루 랄라 산모퉁이 돌아 쌍 무덤가에서 한숨 쉬어 간다어느새 향긋한 솔잎 향이 흐르고 검은 몸통 흰 깃털 작은 솔새가 지저귀는 소나무 숲길을 따라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지나는 행인들이 던지고 간 크고 작은 돌들이 모여 무덤을 이룬 참나무 성황당이 우뚝 서서 검문을 하면 두 손 합장하고 머리 조아려 꾸뻑 목 인사하고 왠지 죄지은 듯 빠른 걸음으로 지나 일곱 집이 모여 사는 작은 동네오막살이 토담집에 도착하면 세상 모두가 내 것 같은 아름다웠던 추억들을 수북이 쌓아 간다.

나의 고향은 소머리 형상을 하고 있는 머레두리라 한다.

지금은 왕 소나무(500년 이상 된 소나무 보호수건너로 고속철도길이 마을을 두 동강이로 갈라 놓아서 새마을운동 시절에 조기 청소가 끝나면 왕 소나무에서 성황당까지 릴레이 달리기 하던 언덕 위의 150여 미터 펼쳐진 길이 없어져 버리고 마을 어귀 양쪽으로 짧은 터널이 두 동네를 연결하고 있다

조용한 밤이면 고속기차가 달리는 굉음과 진동이 마을을 관통하고 누워 있는 잔등을 미세하게 두드린다이제는 기차 길옆 오막살이에 더 이상 아기들도 볼 수가 없다

 

(* 부용 : 흙탕물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연꽃을 부용이라고 부르기도 함즉 수부용(水芙蓉). 땅에서 피는 부용꽃은 목부용이라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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