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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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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세상이야


BY 만석 2020-04-16

"카톡 카톡" 에구구~. 이쁜 내 외손녀다.
"할머니. 시간 괜찮으시면 전화 좀 드려도 되나요?"
아직 한글의 맞춤법을 잊지 않고 또박또박. 그래서 더 이쁘다. 그런데 워낙 바쁘게 살아서, 보통 때에는 좀처럼 전화를 하지 못하는 아이인데 왠일일꼬. 금방 영상통화 벨이 운다. 화면에 나타난 아이는 여전히 이쁘다. 아니 더 곱다.

박사과정에 있는 그녀는 레포트를 작성하느라고, 약을 다섯 가지 이상 복용하는 사람과의 인터뷰가 필요하단다. 제 어미가, 할머니가 제격이라며 추천을 했다 한다.
과히 명예롭지 못한 추천이고 인터뷰지만, 내 손녀딸의 일이 아닌가. 할 수만 있다면 레포트는 써 주지 못하랴만은, 암튼 힘 닿는 데까지 도와 주어야지.

시방 복용하는 약을 불러대고, 약을 필요로 하는 곳이며 약의 모양, 용량과 용법까지를 알려주고는,
"혹시 레포트 작성하다가 물어볼 게 있으면 시간 상관을 말고 전화 해라."이르니,
"그렇게 말씀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한다. 하하하. 어법이 과히 교과서적이다. 에미가 한국어를 잊지 말라고 정문구만 고집한다더니 잘 따랐나 보다.

삐약거리며 내 품에서 자란 그녀는 벌써 스물 다섯. 엊그제 같은데 미국으로 건너간 지가 15년이 지났구먼. 손주 자랑은 흠이 아니렸다? 내 손녀라서가 아니라, 빼어난 미모와 스타일까지. 거기에 공부도 잘 한다. 큰딸을 그리며 옛 추억에 잠겨있는데 다시 카톡이 온다. 약명을 인터넷으로 찾으려니 그런 약이 없단다. 그럴 리가 있나. 시방 내가 이렇게 잘 먹고 있는데 말이다. 아항~!내 발음이 시원찮았나 보다.

그렇다면 방법은 또 있지. 처방전을 펼쳐놓고는, '찰칵, 찰칵'.
이보다 더 정확할 수는 없다. 사진을 보냈더니, 금방 답이 온다.
"와~! 할머니. 이런 것도 다 하세요? 우리 할머니 짱이세요."
"내가 이제 뭘 도울 수 있겠니. 이런 거라도 도와줘야지."

아이의 레포트에 일조를 한 것 같아서 마음이 뿌듯하다.
"우리 할머니 역시 대단하셔요."
폰에는 예쁜 내 손녀딸이 날린 리모티콘이 줄을 지어 날아든다.
<엄지척>, <나르는 하트>,<고맙다고 꾸벅꾸벅>. 참 좋은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