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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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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게임


BY 봄비 2020-02-18

주말에 포슬포슬 이쁜 눈이 오길래 남편과 마스크를 쓰고 밖으로 나갔다.
거실창으로는 남의 집 벽 밖에 보이지 않으니 제대로 눈구경을 할 수가 없어서 오로지 눈구경 삼아 나간 걸음이었다. 나간 김에 생필품도 살겸 시장을 먼저 들러 구입을 하고 가끔 남편과 장시간 앉아 있곤 했던 동네 카페로 가려다가 뭔 변덕인지 내가 그냥 맥도날드로 가자고 했다.
2층에 앉아 있으면 사각의 통유리로 보이는 풍경이 제법 괜찮고, 카페보다는 사람들이 덜 붐빈다는 이유였다.  밥 먹은지 얼마 안되었기에 간단하게 커피와 간식거리를 사서 2층으로 올라가니 창가쪽은 눈구경 때문인지 평소와 다르게 사람들이 다 앉아 있었다. 우리는 여러명이 앉을 수 있는 회의용 테이블처럼 생긴 곳에 의자가 불편했지만 착석을 하고 바깥풍경을 감상했다.

아직 다 떨어지지 않은 잎사귀들이 간신히 매달려 있는 가로수, 8차선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 건너편 빌딩들, 오가는 행인, 탐스럽게 내리는 눈꽃들을 보면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창가쪽에 앉았던 커플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내가 얼른 쟁반을 들고 가서 이미 비어 있는 그 자리 탁자에 쟁반을 탁! 놓는 순간 그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던지 어느 초로의 여인이 음식쟁반이나 손에 든 음식 없이 개인 사물만 가지고 와서 냉큼 의자에 앉으려는 자세를 취한다. 나는 쟁반을 막 놓은 상태라서 허리를 굽힌 채였고, 그 여자는 금방이라도 앉으려는 찰라였다. 나는 생각했다.

양보할 것인가, 싸울 것인가. ㅎㅎ 분명 내가 먼저 도착해서 찜했는데...

이런 걸 결정하는 건 내게 아주 쉽다. 나는 일부러 쟁반만 탁자에 놓으려다가 다시 오기로 예정되었던 사람처럼 바로 쟁반을 들고 원래 앉았었던 자리로 돌아왔다. 남편이 어이없어 했고, 방금 일어나 쓰레기를 버리고 1층으로 내려가려다 지금의 광경을 목격한 그 자리에 앉았었던 커플이 햐~ 하는 단말마 감탄사를 내뱉으며 나보다 더 황당해했다.
나는 돌아와서 남편한테 말했다.

오늘은 지는 게임만 하네?

시장에서도 상인이 불친절하게 대했지만 워낙 장사가 잘되는 곳의 상인들이라 대체로 불친절한 것을 감안해서 참은 일이 있기에 한 소리였다.

참고, 지고...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나는 꼭 이기려고만 하지 않는다.
일단 감정이 욱 올라오면 불물 안가리는 편이지만, 감정을 건드리지 않으면 대체로 참는다. 이겨봤자 득이 작으면 참고 져준다. 하지만 지고 나면 서서히 감정이 올라오는 사건들이 있다. 그럴 땐 이미 상황종료된 후라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감정이 엄한 곳을 향할 때도 있다. 사실 이 자체가 무서워서 이기고 싶을 때도 많다.

지는 게 이기는 것이다. 아니다,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반드시 이겨야한다.

이 둘의 팽팽한 긴장은 아마 더 이상 살지 않아도 될때 끝나지 않을까 싶다. 이쪽으로는 아직까지 나름의 철학이 없어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갔다 한다.

그런 측면에서 요즘 너무 재밌게 보는 낭만닥터김사부에서 김사부의 다음의 대사가 참 마음에 와 닿는다.  김사부는 그 동안 보아왔던 주인공들의 조용한 승리보다는 바로 바로 맞대응하면서 파이팅 넘치게 반대편과 싸워나간다.

"불편하면 불편하고 말아 .. 불편하다고 무릎꿇고 문제 생길까봐 숙여주고 치사해서 모른 척 해주고 더러워서 져주고. 이런저런 핑계로 모든 게 쉬워지고 당연해지면 너는 결국 어떤 취급을 당해도 싼 그런 싸구려 인생을 살게 되는거야"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이 싫어 그냥 참고 지고 말겠다는 후배의사한테 따끔하게 충고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나는 말빨 좋은 김사부도 아니고 승부욕이나 파이팅이 넘치는 사람이 아닌지라, 당분간 져주는 게임을 하고 싶다. 지는 것도 가히 나쁘지만은 않다.

눈 내리는 풍경을 더 가까이서 보게된 그 여자는 마음이 불편한지 계속해서 나를 쳐다보면서 눈치를 봤다. 내가 그 시선을 피할 이유는 없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