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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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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방문기


BY 귀부인 2019-09-23


영등포역에서 출발 두 시간 정도 여유를 두고 기차표를 끊었다.
지난 3월에 그랬던것처럼 한국에선 흔하지 않은 과일들을 사기위해
백화점 지하에 있는 수퍼에 들렀다.
그런데 계절이 바뀌어서일까? 과일의 종류가 다양하지도, 그리고
그다지 싱싱하지도 않았다.

갑자기 당황스러웠다.
"뭐 이런걸 다 사왔디야? 비쌀텐디 .다음에 올땐 그냥 와 ."라고
말씀 하시긴 했지만 너무나 맛있게 드시던 시부모님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과일을 들었다 놨다 한참을 망설이는 나를 예의 주시하던 직원이,
내가 살것처럼 보이지 않았던지 못마땅 한듯 
"자꾸 만지시면 안되요."하고 짜증난 표정을 애써 감추며
내게 핀잔을 주었다.

화들짝 놀라 손에 잡았던 과일을 내려놓고선 그리 크지않은 수퍼를 한 바퀴
빙 돌며 뭘 사갈까 고민하다
간간한 반찬 좋아 하시는 시아버지 입맛에 맞출 요량으로,
된장에 박아둔 고추지와 몇가지 젓갈과 반찬을 산 뒤,
우족과 꼬리를 사기위해 육류 코너로 갔다.

내 옆에서 꼬리를 사기위해 이것저것 골르시던 일흔 쯤 되어 보이시는
곱게 늙으신 할머니 한 분이
"부모님 드렬려고 사요?" 하고 물으시길래
"네,그려려구요.살아 계실때 잘 해드려야죠."하고 싱긋 웃으며 답했더니
마치 당신한테 사 주는것 마냥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고맙다고 하셨다.

보통은 기차를 타기전에 공중 전화로 몇 시에 도착하는지 알려 드린다.
그런데 이번엔 수퍼에서 시간을 지체하는라 기차 출발 시간이 빠듯해
전화도 드리지 못하고 부랴부랴 기차에 올랐다.

장항행 기차를 타고 시댁까지 가려면 대략 3시간 반이 걸린다.
혼자서 여행하긴 살짝 지겨운 시간인데 이번엔 다행이도
친구가 쓴 책을 읽느라 지겨웁지가 않았다.
간간이 피곤한 눈을 쉬기위해 차창 밖을 내다보니 휙휙 지나가는
초록 풍경이 그리 좋을 수 가 없었다.

황량한 땅 요르단에선 결코 볼 수 없는 초록의 향연은 보는것 자체 만으로도
행복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한국에서 늘 보는 사람들이야 여름이니 당연히 푸르르지하고 무심히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처럼 전 국토의 70%이상이 광야인 나라에서
살아 본 사람이라면 한국 여름의 눈만 뜨면 보이는 싱싱한 초록이
얼마나 감사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오후 4시쯤 시댁에 도착했다.넓은 마당에서 늦 여름 시든 햇빛을 등 지신체
마늘을 잔뜩 꺼내놓고 손질을 하시던 시부모님들이,
큰 며느리 인사 소리에 깜짝 놀라신다.

"어찌 소식도 없이 왔디야."하며 주름진 얼굴에 함빡 웃음으로 반기셨다.
오랜만에 보는 아들도 아니요,손자도 아닌 며느리를 이리 반겨주시니
나 또한 고맙기도하고.....
양손의 짐을 거실에 밀어넣고 나오니 먼지 묻은 손을 휘휘 내저으시며
"너는 피곤할텐디 들어가서 쉬어. 엄마,아부지 얼른 끝내고 들어갈 텐게."
하셨다.

시차 적응도 되지 않았고,기차간에서 겨우 김밥 한줄로 점심을 떼운터라
피곤하기도 하고 배도 무척 고팠지만, 
아직은 더운 늦 여름날 두 노인네가 일하시는데 방에 가만히 앉아 쉰다는게
어디 말이나 될법한가?

얼른 옷을 갈아입고 화사하게 화장한 얼굴로 피곤한 기척을 숨기고 ,
그러나 퀭한 눈을 하고 마당의 마늘 무더기 앞에서 일하시는 시부모님 옆에
나란히 쭈그리고 앉아 일손을 거들었다.

마늘은 깔줄이야 알았지,시장에 내다 팔기 위한 손질은 해본적이 없었지만,
두 분 일하시는거 곁눈으로 봐가면서 눈치껏
따라했다.

오후의 더운 열기 품은 햇볕이 내 등을 달궜지만, 간간이 구름이
햇볕을 가려주어 견딜만했다.
고개만 들면 호박 넝쿨도 보이고,덜 여문 벼 이싹도 보이고,
조금 멀리로는 고추밭도 보였다.

나른한 늦여름 오후의 농촌 풍경 속에서 늘 그렇듯 시아버지는
지난날 있었던 이야기를 하시고 ,
난 이미 수 십번을 들어 외우다시피한 이야기를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 마냥
아~네~네~ 하며 들었다.

아,그러나 체 10분이나 지났을까 ,다리도 저리고 허리도 끊어질듯 아프고....
그렇지만 평생 이렇게 일해오신 시부모님 앞에서 엄살을 피울수도 없고.....
게다가 가만 살펴보니 지난 몇 개월 사이에 두 분 다 무척 여위시고
기력이 상당히 없어 보이셨다.
아닌게 아니라 입맛이 없으셔서 겨우 밥에 물 말아 짠지하고 먹을때도
많다고 하셨다.

밥을 먹기 싫어도 약을 먹기위해 겨우 끼니를 떼운다고도 하셨다.
웬지 큰 며느리로서 함께 살지는 못할망정 가까이서 가끔 반찬도 해다
날르고 해야는데 멀리 타국에 나가있으니
죄송스럽기도하고...

요령있게 이리저리 자세 옮겨가며 한 시간 넘게 쭈그리고 앉아 작업을 마치니,
다리와 허리가 뻣뻣해져서 일어설땐 나도 모르게 악! 하고 소리가
날뻔 하는걸 간신히 참았다.
이런 나를 보고 시아버진,
"너가 와서 일이 빨리 끝났다. 너도 피곤할텐디 고맙다." 하고
칭찬해 주시니 일한 보람을 느꼈다.

저녁 준비를 위해 부엌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부엌이 예전 같지가 않았다.
비록 시골에 살지만 항상 집을 깔끔하게 쓸고 닦으시던 시어머니는 늘
"우리집은 시골에 있어도 파리가 없어.냄새도 안나쟈?"
하시며 당신 집이 여느 시골집과는 달리 깔끔하다는걸 자랑으로 여기시는
분이었다.
그런데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한 거실과는 달리 ,부엌은 엉망이었다.

끈적이는 부엌 바닥, 정리되지 않은 그릇들 하며,식재료들이 이리저리
널려 있어 너른 부엌이 좁아 보였다..
내가 사 온 반찬을 넣기위해 냉장고를 여니 빈 공간이 없었다.
항상 여러 종류의 신선한 반찬들로 가득했던 냉장고 안에는,만든지
오래된 음식들과 요리하지 않은 상하기 직전의 생선들이
가득했다.

입맛 없으시다며 냉장고 안 반찬을 이것 저것 꺼내지 말라시는데
실은 마땅히 내놓을 반찬이 없었다.
내가 사 온 반찬을 정갈하게 담아 내 놓으니 그럭저럭 밥상이
빈약하지는 않아보여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형광등 불빛아래 조촐한 밥상에서 수저를 들고 시부모님들과 마주 앉아
밥을 먹다 우연히 시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는데 나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