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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난민 방문기


BY 귀부인 2019-05-23

계절의 변화를 앞두고 요즘 날씨가 크게 몸살을 앓고 있다.
우기를 지나 건기로 넘어가는 계절인지라 모래 먼지로 
한껏 심술을 부려 희뿌연하니 앞도 볼 수 없게 만드는가 싶더니,
갑자기 화창한 봄날인듯 상큼한 바람으로 가슴 설레게 하다가 
그저껜 숨도 쉬기 힘들만큼 뜨거운 열풍으로 내가
중동에 살고 있다는것을 새삼 확인 시켜주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래,이게 5월이지'하는 안도감을 주는 
그런 아침이다.

요르단살이 8년째 접어들다보니 이러한 날씨 변덕이 끝나면 
이제 완전한 건기이자 긴 여름이 시작됨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계절의 변화를 앞두고 매일의 날씨를 가늠하기 쉽지않듯 
요즘 이 중동의 상황도 날씨못지않게
예측하기란 쉽지않다.

최근에 다시 격화된 팔레스타인, 이스라엘간의 갈등 ,그리고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제재로 인한 갈등과 그여파로 인해
중동 전체가 잔뜩 긴장을 하고있는 상황이다.
2011년에 발발한 시리아 내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난민으로 떠도는 비극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혹여 새로운 전쟁이 시작 되지나 않을까
심히 염려스럽다.

가까이서 조금이나마 난민들의 고통스런 삶의 모습을
보아왔기에 전쟁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시리아 난민들이 요르단으로 쏟아져 들어오던때
방문 했었던 난민 가정들을 잠시 떠올려 본다.
난민 사역을 하시던 선교사님을 따라 암만에서 차로 
2시간 가량 달려 도착한 곳엔 허허벌판에 시멘트 블록으로 
급조한게 분명한 작고 네모난 집
(집이라기보다 네모난 작은 틀 같은...)들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었다.

그 중에 한 집에 들어가기 위해 낡은 천을 문으로 대신한 곳을 
열어 젖히고 안으로 들어서니 가구라곤 아무것도 없고
휑하니 빈 공간이 우릴 맞이했다.
그저 비,바람만 겨우 막을 수 있는시멘트 블록으로 만든,
대낮인데도 창문이 없어 어두컴컴한 집안엔
두 아이와 엄마가 시멘트 바닥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생사를 알 수 없는 남편과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걱정,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 대한 막막한 두려움에 짓눌려,
마치 삶의 끈이라도 놓쳐버린듯 멍한 얼굴의 엄마와는 달리
9살,7살 두 여자 아이들은 낯선 동양인의 방문이 신기한듯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경계하듯 연신 우리 일행을 
조심스레 관찰했다.
짙은 눈썹에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인형처럼 아주 예쁜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비록 아이들 특유의 호기심은 잃지 않았으나 
헝클어진 머리, 씻지못해 까맣게 때가 낀 옷 소매와 맨발,
그리고 제대로 먹지못해 여읜 얼굴에서
어린아이들의 빛나는 생기보단 엄마의 두려움과 슬픔이
고스란히 전달된 것을 경계심 가득한 커다란 눈망울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들을 방문한 우리가 해줄 수 있는건 통역을 통해 전한 
겨우 몇마디 위로의 말과 이들이 깔고 잘 메트리스와 
이부자리,
그리고 일주일치 양식 정도가 전부였다.

다음으로 방문한 집에서는 15,6세나 될까 말까하는 
얼굴이 하얗고 복스럽게 생긴 앳된 소녀와 젊은 청년이
우리를 반가이 맞이해 주었다.
앞서 방문한 집과는 달리 약간의 가재도구가 갖춰져 있고 
깔끔하니 정리도 되어 있었다.

손님을 환대하는 그들의 관습에 따라 차와 빵 몇 조각을
우리 일행에게 내주었다.
접대로 나온 음식이니 맛있게 먹어주어야 예의에 맞겠지만 
혹시 이들의 하루 양식을 우리가 먹어 치우는게 아닌가하는 
불안함에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이 되기까지했다.

그런데 오누이인가 할 정도로 서로 닮은 소녀와 청년은 
결혼한지 얼마되지 않는 신혼부부였다. 
서로 사촌지간인 그들 부부는 집안에서 서둘러 결혼을 시키고
안전한 요르단으로 떠나 보냈다고 했다.
어린 신부가 가져온 작은 앨범엔 그들의 결혼사진과
가족들 사진이 있었다.
자기 엄마 사진을 가리키며 눈물을 글썽이는 어린 신부의 
모습이 얼마나 짠하던지 나도 모르게 울컥하니
눈물이 났다.

준비해간 물품을 전하고 다음 가정 방문을 위해 떠나려는데
어린 신부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듯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알고보니 남편이 요르단에서 생계를 위해 직업을 구하러 
나가면 하루 종일 집에 혼자 있다고 했다.
요르단에 온지 6개월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 직업을 
구하지 못해 가져온 돈은 다 떨어져 가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했다.

그도 그럴것이 난민 신분이라 직업을 갖는게 불법이라 
언제 직업을 구할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고도 했다.
집 밖으로 나가는건 안전이 보장되지 않아 남편이 나가면 
열쇠 채운 집에서 갖혀 있다시피 하다보니 하루 종일
사람 만날 일이 없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말도 통하지 않은 낯선 우리 일행의 방문이 
너무 반갑고 고맙다고, 그리고 헤어짐이 서운하다고 했다.
그날 우리 일행은 20여 가정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아직 학교에 다니고 있을 나이에, 
부모를 떠나 낯선 땅 요르단에서의 불투명한 삶에 내던져진
어린 부부와 수 많은 난민들의 앞날이 걱정되어
그날 밤은 쉽게 잠들지 못했었다.

그 이후로도 종종 난민들의 가정을 방문하며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체 그들 국가로부터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하는
이들의 고통스런 삶을 보면서 도대체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전쟁은 계속되어야 하는지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흔히들 중동은 화약고라고 한다.
이스라엘과 중동 회교도와의 갈등,시아와 수니의 종파 
갈등으로 인한 사우디와 이란의 대리전,
석유를 둘러싼 서구 열강들의 이권 다툼,
쿠르드족 문제,지금은 세력을 잃었다 하지만 여전히 
불씨는 남아 있는 IS 문제까지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이 중동의 평화를 바라는건 
지나친 욕심일까?

그렇지만 새로운 전운이 감도는 이곳 중동이 평화를 회복하게 
되기를,그리고 시리아의 내전이 종식되어
떠도는 수 많은 난민들이 평화가 회복된 고국으로 돌아가
새로운 희망의 삶을 시작할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