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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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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무 소꼽동무


BY 가을단풍 2017-09-03

식탁에 탁 !

이렇게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까지 부부싸움을 한후

남편이 거금 20만원을 지어 주웠다.

깜짝 놀랐다.

설겆이를 하면서 혀를 낼름 내놓으며 웃었다.

그리고 돌아서서 다시 화난척

오 나는 척척 박사인가보다.

좋아도 좋치않은척

화가 풀려도 화가난척

오늘날자 성씨를 "척"씨로 바꿔야 할것 같다.

헹~

너무급해 케리어를 챙길틈이없었다.

길죽한 자루 가방에 이것저것 손이 잡히는대로 쑤셔 넣었다.

강원도 평창으로 go go ~

시골 초등학교 친구가 강원도 평창에 야산을 산후

집을 지었다.

물맑고 공기 좋으니 와서 일박 이일을 하라했다.

한번도 남자와 섞여서 여행을 해본적이 없고

외간남자와 사적인 식사를 해본적이 없어 고민중이었는데

남편이 등을 떠미는 것이었다.

일박 이일도 좋고 삼박 사일도 좋으니 걱정말고 다녀오라구.

너무 산골인지라 길이 아주 험했다.

운전하는 친구한테 미안했다.

차 망가지면 와이프한테 혼날텐데.....

지난밤 내린비로 길이패여  더 험한 것이었다.

 

개짖는 소리는 삶에 소리였다 어찌나 반갑던지.

컴컴한 밤중에 겨우 친구집에 도착했다.

머리가 하얗다못해 고셔버린 친구도

배가 불뚝나와 어린아이 하나쯤은 안고 있는듯한 친구도

그냥 반가웠다.

친구 한명은 우울증을 앓고있는 아내를 데리고 왔다.

안온다고 안온다고 앙탈을하는 아내에게 하루 일당 오만원을 손에 쥐어주면서까지

데리고 온 모양이다.

술을 죽도록 마셨다.

술병 바닥까지 긁어마시는 기분으로 마셨다.

쇼파에 길게 앉아 사감 노릇을 했다.

위암 수술을 한 친구가 있어서

마누라 대신 잔소리를 해야했다.

나머지는 술을 마시다 죽거나 말거나

밤을 새워서 병이나거나 말거나

나도 집에서 남편과 다투던 생각이 나서 오늘 끝장을 낸다는 기분으로 마셨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주 석잔을 마셨다.

쇼파에서 졸고있는데 내 흉을 봤다.

나보고 아직도 딱지가 안떨어졌다하며...

못 들은척 ~

나는 어린시절 할머니의 극성으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귀히 자라야 귀한 사람이 된다는 지론을 가지셨던것 같다.

시골 친구들 나이는 고무줄 나이인지라

나이가 서너살 차이나는 사람도 다 친구가 되었다.

남자와 여자의 구분도 없었다.

남에집 묘지에 올라가 비닐로 만들어진 비료푸대 하나씩 들고 미끄럼을 타기도 했다.

홀랑 홀랑 뻘거벗고 냇가에세 미역을 감기도 했다.

정월 개보름이라는것이 있어서 이집저집 다니면서 밥을 훔쳐다가 남에집

사랑방에서 먹기도 했다.

친구들의 그런 모습을 멀리에서 보면서 나는 그냥 구경하는 사람처럼 자랐다.

그렇게 길러져서 얼마나 귀히 사는지는 몰라도

친구들이 나를 불편해 했다.

자기들끼리는 더러 어울려서 놀기도하고 성인이 되어서 만나기도 하였지만

나는 그냥 소식이 딱 두절된채로 할머니의 염려처럼 조용히 살았다.

이렇게 조용히 살던내가 탈을 벗은 것이다.

할머니를 원망하는것은 아니지만 나는 부모를 잘못만났어야했다.

그랬더라면 엄청난 추억을 쌓았을텐데.

삶의 소재가 다양했을것 같다. 그리고 사는게 어려웠더라면 내 손재주로 돈을 벌었을텐데..

사람들은 내 손재주 묶히는것을 아까워했다.

아무튼 이리하여 강원도 평창에서의 일박이일이 마련된것이다.

내가 살던 소꼽동내도 워낙에 시골이라 이야기거리도 참 많다.

친구 오빠가 밤마실 다니다가 뱀에 물렸던 이야기

친구 동생이 동내 아저씨가 잡아 기둥에 묶어놓은 뱀에게

잠자리를 잡아서 먹이를 준다고 손을 내밀었다가

뱀에게 꽉 물렸던 이야기도 들었다.

 

한번은 이런일도 있었다.

칡뿌리를 캐던 아이에게 바위가 덮치는 바람에 온 동내 사람들이 바위밑에 깔려있는

아이를 구출한적이 있었다.

이때 많은 아이디어가 우리 아버지 머리에서 나왔다.

약이 귀했던 시절이라 아버지께서 적당히 약을 만들어쓰기도 하였다.

덕분에 나는 귀히 자랐는지는 몰라도

내 어린시절 소나기라는 소설에 나올법한 이야기들까지 몽땅 잘려버렸다.

그런 친구들을 내가 찾았다.

그리하여 더듬 더듬 자기들끼리 고향집을 드나들면서 만나던

친구들을 한데 모은 샘이다.

내 결혼 생활이 순탄치 못해서 고향집엘 거의 가지 않은 상태로 살았으며

일가 친척들도 안보고 살았었다.

나이를 먹고보니 얼마나 그립던지 너무 너무 보고 싶었다.

여기 저기 수소문해서 몇명을 찾고보니 줄줄이 사탕인지라

처음에는 여자친구들끼리 모임을 했었는데

남자친구들이 은근슬쩍 끼고 싶어했다.

그리하여 강원도 평창까지 되몰려가서 십진을 떠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나는 훈장 아버지 딸답게 적당 적당히 사감노릇을 하며

친구들이 남자 여자 섞이다보니 적당한 중재가 필요하기도 했다,

슬쩍 못본척 못들은척 그것도 사감의 아량이었다.

아무튼 친구들과 일박 이일을 지내는 동안 얼마나 웃었던지

배꼽이 빠져 달아날뻔했다.

집으로 돌아와 배꼽이 빠진것 같다 했더니

친구가 하는말

"어쩐지 배꼽 하나가 그냥 돌아다니는것 같더니...."하며

당장 와서 찾아가라 했다.

그런중에도 한 친구에게는 손주가 태어나기도 하였다.

 

삶이라는것이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뱀물렸던 오빠도 어른이되어 은행에서 근무하다가 퇴직을 하였고

뱀에게 잠자리 잡아주던 동생도 시골동내 근처에서 살고있다.

그리고 바위에 깔려있던 그때 그 어린 아이도 어른이 되어

시골 동내 이장이 되었다.

우리들이 지금

벼 이삭처럼 주워 모은 친구들은 객지로 나간 친구들이 많다.

그리웠던 만큼 재는것 없이 소탈하다.

나만 조심하면 문재될게 하나도 없다.

아직도 이친구들은 내가 어려운듯

 유치원에서 일을 한다는 친구가 장난스레 배꼽인사를 하기도 한다.

내가 세상을 살아보니

어려서 귀히 자란것과 천히 자란것은 아무런 차이가 없는듯.

재물이 있고 없음도,학력이 있고 없음도 그다지 의미가 없는듯.

친구사귐에서 그것도 소꼽 동무 사귐에 있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듯 싶다.

다들 잘 갔는지

위암 수술한 친구는 뒤탈이 없었는지

술병나서 고생이나 안하는지 걱정은 되지만 그냥 다들 잘 지내려니 생각한다.

어서 세월이 가야지.

 위암 수술한 친구는 수술한지가 2년반 되었다는데

대머리가 더 훌렁 훌렁 벗겨져도 세월이 빨리가서 완치 판정을 받아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