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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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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백숙


BY 그대향기 2015-12-08

아무 반찬이 없어도 맛있었다.

달랑 오리 한마리만이 큰 솥에서 부글부글 끓었다.

장작을 넣고 한데 걸어 놓은 솥에서 한약재 조금과 ​마늘, 엄나무 말려 놓은 거 몇토막

잡곡 한줌을 넣고 한시간 반을 뭉긋하게 고으듯이 삶았을 뿐.

반찬은 소금 한접시가 전부였다.

잡곡을 넣어 거무스럼한게 영양스럽게 보였다.

음~냄새까지도 좋다.​

그래도 꿀맛이었다, 아니 오리 맛이었다.

늘 북적거리는 단체급식이 아니라 남편과 나 단 둘만이 하는 식사라서 더 맛있었다.​

겨울 동파방지도 할겸 오랫만에 산에 올라 마른 풀대궁도 잘라내고

와송도 옮겨 심으며 오래백숙으로  브런치가 아닌 런디너를 먹은 셈이다.

늦은 점심이라 더 맛있었는지도 모른다.

남편이 위생장갑을 끼고 쫄깃한 다리살만 골라서 발라주니 더 맛있다.

남편은 고기는 손으로 뜯어 먹어야 맛있다며 ​중국영화에서나 나올 법하게 들고 뜯는다.

잡초를 뽑다가 마른 도라지 대궁을 따라 호미로 땅을 팠다.

세상에나~

몇년을 땅 속에서 자랐던 도라진지 굵기가 어지간한 아이 팔뚝만하다.

그런게 몇뿌리나 나왔다.

대충 흙 털어내고​ 두어번  씻어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진한 향이 입안 가득, 달고 약간 씁쓰레하다.

몸에 좋은 약이 입에서 쓰다길레 먹어뒀다.​

월동이 안되는 초록이들은 부엌에 넣고 비닐로 바람을 막았다.

가끔씩 난로를 피워 온기를 줄 참이다.

잡초가 말라 죽은 텃밭이 어수선했는데 낫으로 걷어내고나니 말끔하다.

봄 여름 가을까지 내내 골칫거리였는데 속이 후련하다.

추위 앞에서는 지독한 잡초도 기를 못 쓴다.

기를 못 쓴다고 죽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어마무시한 씨앗을 땅에 흩뿌려 놓고 사라졌을 뿐 봄이 오면 어김없이 올라온다.​

다 좋을 수는 없다.

잡초가 있는 계절에는 꽃도 많다.

지금은 잡초도 꽃도 다 사라지고 그냥 썰렁하다.

겨울에도 죽은게 아니라 봄을 안고 조용히 기다리고 있겠지.

매서운 눈보라 속에서도 화려한 봄을 기약하며 인내하면서.

이불 한장 없이 잠깐 비춰지는 겨울 햇살만 의지하고 언 땅 속에 뿌리를 박고 있다.

화려한 봄을 위한 무서운 침묵의 계절도 기꺼이 참아낸다.​

봄이 오면 늘 겸손해진다.​

말라 죽은 것 같은 어린 가지에서도 움이 돋고

아무 것도 안 보이는 언 땅을 뚫고 ​여린 순이 올라 온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는 걸 알려 주는 것 같다.

서두르지 말고 ​뭐든 때가 되도록 기다리라는...

외로움도 이겨야 하고 조급함도 버려야한다는...

요란하지 않아도 큰소리로  떠들지 않아도 ​조용하고 엄숙한 가르침을 준다.

곧 본격적인 추위가 오겠지.

뉴스에서는 날마다 어디가 영하 몇도이며 최저 기온이 얼마며 눈은 어느 지방에 얼마나 왔다며

입김을 하얗게 ​뿜어내며 숨가쁘게 알려주겠다.

겨울이 제대로 추워야 전염병도 덜 하고 밭작물도 맛이 제대로 든다는데

그래도 서민들은 덜 추운 겨울이 좋다.

덜 추워야 가끔 산에 올라가서 또 오리백숙도 해 먹을건데...

아들이 년말고사를 치루고나면 한번 내려 온다고 했는데 그때 올라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