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반찬이 없어도 맛있었다.
달랑 오리 한마리만이 큰 솥에서 부글부글 끓었다.
장작을 넣고 한데 걸어 놓은 솥에서 한약재 조금과 마늘, 엄나무 말려 놓은 거 몇토막
잡곡 한줌을 넣고 한시간 반을 뭉긋하게 고으듯이 삶았을 뿐.
반찬은 소금 한접시가 전부였다.
잡곡을 넣어 거무스럼한게 영양스럽게 보였다.
음~냄새까지도 좋다.
그래도 꿀맛이었다, 아니 오리 맛이었다.
늘 북적거리는 단체급식이 아니라 남편과 나 단 둘만이 하는 식사라서 더 맛있었다.
겨울 동파방지도 할겸 오랫만에 산에 올라 마른 풀대궁도 잘라내고
와송도 옮겨 심으며 오래백숙으로 브런치가 아닌 런디너를 먹은 셈이다.
늦은 점심이라 더 맛있었는지도 모른다.
남편이 위생장갑을 끼고 쫄깃한 다리살만 골라서 발라주니 더 맛있다.
남편은 고기는 손으로 뜯어 먹어야 맛있다며 중국영화에서나 나올 법하게 들고 뜯는다.
잡초를 뽑다가 마른 도라지 대궁을 따라 호미로 땅을 팠다.
세상에나~
몇년을 땅 속에서 자랐던 도라진지 굵기가 어지간한 아이 팔뚝만하다.
그런게 몇뿌리나 나왔다.
대충 흙 털어내고 두어번 씻어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진한 향이 입안 가득, 달고 약간 씁쓰레하다.
몸에 좋은 약이 입에서 쓰다길레 먹어뒀다.
월동이 안되는 초록이들은 부엌에 넣고 비닐로 바람을 막았다.
가끔씩 난로를 피워 온기를 줄 참이다.
잡초가 말라 죽은 텃밭이 어수선했는데 낫으로 걷어내고나니 말끔하다.
봄 여름 가을까지 내내 골칫거리였는데 속이 후련하다.
추위 앞에서는 지독한 잡초도 기를 못 쓴다.
기를 못 쓴다고 죽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어마무시한 씨앗을 땅에 흩뿌려 놓고 사라졌을 뿐 봄이 오면 어김없이 올라온다.
다 좋을 수는 없다.
잡초가 있는 계절에는 꽃도 많다.
지금은 잡초도 꽃도 다 사라지고 그냥 썰렁하다.
겨울에도 죽은게 아니라 봄을 안고 조용히 기다리고 있겠지.
매서운 눈보라 속에서도 화려한 봄을 기약하며 인내하면서.
이불 한장 없이 잠깐 비춰지는 겨울 햇살만 의지하고 언 땅 속에 뿌리를 박고 있다.
화려한 봄을 위한 무서운 침묵의 계절도 기꺼이 참아낸다.
봄이 오면 늘 겸손해진다.
말라 죽은 것 같은 어린 가지에서도 움이 돋고
아무 것도 안 보이는 언 땅을 뚫고 여린 순이 올라 온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는 걸 알려 주는 것 같다.
서두르지 말고 뭐든 때가 되도록 기다리라는...
외로움도 이겨야 하고 조급함도 버려야한다는...
요란하지 않아도 큰소리로 떠들지 않아도 조용하고 엄숙한 가르침을 준다.
곧 본격적인 추위가 오겠지.
뉴스에서는 날마다 어디가 영하 몇도이며 최저 기온이 얼마며 눈은 어느 지방에 얼마나 왔다며
입김을 하얗게 뿜어내며 숨가쁘게 알려주겠다.
겨울이 제대로 추워야 전염병도 덜 하고 밭작물도 맛이 제대로 든다는데
그래도 서민들은 덜 추운 겨울이 좋다.
덜 추워야 가끔 산에 올라가서 또 오리백숙도 해 먹을건데...
아들이 년말고사를 치루고나면 한번 내려 온다고 했는데 그때 올라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