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휘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내 눈길이 창밖으로 향한다. 비둘기 세 마리가 내가 펼쳐 널어놓은 참깨 송이를 발로 헤쳐 가며 낱알을 쪼아 먹고 있다.
방충망을 휙 소리가 나게 연다. 그 결에 놀란 비둘기 녀석들이 푸르륵 똥줄이 빠지게 날아간다. 난 그 걸로도 성이 안 찬다.
“이 망할 놈의 비둘기들, 이 게으른 비둘기들, 내 손에 잡히기만 하면 아작을 낼 거야. 밭에 떨어진 것도 많은데 왜 거기 가서 주워 먹지 않고 남이 널어놓은 거 기웃거리는데?”
날아가는 꽁지에 대고 한바탕 쏟아낸다. 하지만 그런 말이 먹힐 리가 없다. 비둘기들은 내가 한눈만 팔면 쪼르륵 와서 쪼아 먹다 내게 걸리면 내 아작 소리를 들어가며 똥줄이 빠지게 날아가곤 한다.
난 누가 비둘기를 평화의 새라 했냐고 투덜거린다. 나뿐이 아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 머릿속에는 ‘비둘기=평화의 새’라는 등식이 있을까 싶다.
얼마 전 요소 비료를 사기 위해 농협 경제사업부에 들른 적이 있었다. 그때 할아버지 한 분도 와 계셨는데 비둘기 약을 찾으신다.
난 귀가 솔깃하여,
“그런 약도 있어요?”
“예.”
“떨어졌나 봐요?”
없다는 말에 내가 물었다.
“못 팔게 해서 취급을 안 합니다.”
“왜요?”
난 그 알량한 환경단체에서 압력이라도 넣은 건가 하여 묻는다.
“약이 독해서요.”
“독해야 한 방에 비둘기를 잡죠.”
난 이미 내 적이 돼버린 비둘기를 동정하는 마음은 눈곱만큼도 일지 않는다.
콩 파종기에는 싹이 나올 때 똑똑 따 먹어 망쳐놓는 일이 다반사다. 제 작년에는 밭에 콩을 직파하고 싹이 나올 무렵 3일을 밭을 지켜야 했다. 올해도 집 앞 텃밭에 녹두하고 팥을 심어놓고 비둘기가 쪼아 먹은 곳을 많이 올라온 곳에서 뽑아 옮겨심기를 수없이 해야 했다.
누가 비둘기를 평화의 새라 하는가?
농사를 지어본 사람만이 알리라. 비둘기가 얼마나 농사꾼 마음을 모질게 만드는 새인지. 빌딩 숲에 한가롭게 앉아 동물 보호를 외치는 소리가 얼마나 한심하게 들리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