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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지 않는 인생 3.(술독)


BY 편지 2015-08-02

술독

결혼 전 남편 별명 중 하나가 술독이었다.

초저녁부터 술로 시작 해 밤새 달려 새벽까지 배가 터질 듯 마셔서 이런 별명이 붙어버렸다.

소주도 음료수 마시듯 달콤하게 넘기지만 양주 맛이 제일 으뜸이라고 했다.

투명한 유리컵에 투명한 얼음을 넣고 누리끼리한 액체를 살폿이 붓고,

딸랑딸랑 흔들 때의 남편의 미소는 끝내주게 멋들어지고 섹시해 보인다고 내가 느끼는 게 아니고,

본인 스스로 느끼는 것 같았다.

술잔을 들고 본인한테 반한 표정은 남편을 만나 처음 본 희귀한 장면이었다.

웃기시네! 내가 보기엔 오줌처럼 뇌리끼리~~하구만.’

양주를 제일로 치는 이유는 양주 따라 주는 여자들이 멋있어 보이고 예뻐 보여서 라고,

본인은 말한 적은 없지만 내가 봐서는 그 분위기를 엄청 오줌 싸게 좋아라 해서

양주를 사랑하게 된 이유가 된 것 같다.

양주 잔을 빙글빙글 돌리고,

돈을 뿌려댔으니 술집여자들이 얼마나 달려들었을까? 안 봐도 비디오다.

그러니 양주 값도 대단했고, 여자 있는 술집에 가니 여자 값도 대단했을 것이다.

나한테 갔다 주는 월급보다는 밖에 있는 여자들과 술을 주거니 받거니 놀다 보니

한달 월급보다 술값이 많이 나오는 건 당연했다.

술집지배인이 술값 받으러 신혼 집까지 찾아왔을 정도니까 말하면 뭣하리.

한탄한들, 흉을 본들 뭣하리.

 

남편은 노는 여자를 좋아했고, 얌전한 여자를 무시했다.

그러하다 보니 나를 무시했다고 나는 생각했다.

한번은 집 앞 술집에서 나를 부른 적이 있었다. 나가기 싫었지만 나갔다.

내가 너무 술 따라 줄지도 모르고, 술 비위 맞출 줄도 몰라 술독에 빠져 사나 보다 하고

분위기 맞춰주려고 나갔다. 바텐더가 있던 술집이었다.

술 만들어주는 여자랑 마주보는 테이블에 남편은 양주를 한 병 놓고 앉아있었다.

여자가 내게 칵테일을 한잔 주었다.

남편이랑 딱 한번 술잔을 부딪히고, 그 다음부터 나는 없는 취급을 당했다.

나를 완전 무시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남편과 술 따라주는 여자와 얼마나 웃고 떠들고 노는지 술이 거나하게 취한 남편은

나를 보고 윙크를 하는 것이 아니고,

술집 여자를 보고 한쪽 눈이 멀도록 윙크를 해 쌌고 있었다.

눈물이 나오는 걸 참았고, 그 자리에서 뛰쳐나오고 싶은 걸 참았다.

 

한번은 시내에서 나를 불렀다. 호화찬란한 술집에 나를 데리고 갔다.

무대가 영화극장 처럼 넓고 컸다. 테이블에 놓인 양주와 과일 안주가 예술조각 같았다.

술은 한잔 받아서 홀짝홀짝 마시는척했다. 무대엔 가수가 노래를 불렀고 퇴장을 했다.

그러더니 몸매가 육감적인 여자가 나타났다.

겉엔 얇은 망사를 걸쳐서 가슴 싸개와 팬티가 다 보였다.

음악에 맞춰 성관계를 하는 표현을 하며 춤을 추더니 옷을 하나하나 벗기 시작했다.

가슴 싸게 까지 벗어 던졌다.

그 다음은……끈 달린 똥꼬낀 팬티만 입고, 다시 성관계 하는 춤을 추었다.

남편은 갑부인 것처럼, 갑부이긴 했었다 그 당시엔.

팔을 소파에 올리고 편안하게 이 장면을 즐겼다.

그 뒤부터 나는 남편이 술만 먹고 들어온다고 하면 그 장면이 떠올라 괴로웠다.

반대로 남편은 그 장면을 떠올리며 즐겁게 잠이 들었을 테지만 말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 시절에는 그런 호화야리꾸리한 술집에 내 남편뿐만 아니고

대부분의 남자들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난 그런 세계를 몰랐고, 젊었고 신혼이라서 충격이 컸던 것 같다.

이런 유흥업소를 누구나 간다지만 남편은 그걸 유별나게 좋아한 게 문제가 되었다.

 

돈을 물쓰듯 썼다. 도박에 쓰고, 양주한테 쓰고, 똥꼬낀 여자 팬티에 썼다.

그런 여자들과 어떻게 놀고, 같이 밤을 보냈는지는 모른다.

남편이 대놓고 내게 자랑하지 않았고,

여관으로 들어가는 것을 흥신소직원을 시켜 사진을 찍지 않았으니까 모른다고 해야겠다.

친구 하나는 (그 집 남편도 부자였다) 모텔에 드나드는 남편을 흥신소에 의뢰해 사진을 찍어

이혼을 하자고 난리를 치고, 위자료를 두둑하게 내 놓으라고 했다지만 나는 그럴 용기가 없었다.

그 사실을 안다는 게 너무 두려웠고, 내가 정신병원으로 실려갈 것 같아 무서웠다.

친구는 결국 이혼을 하고 위자료를 받아 냈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그리 잘한 것 같진 않다.

친구는 남편이 술집여자랑 모텔에 들락거린걸 앎으로 해서,

바람 핀 남편 보란 듯이 복수를 한다고 한 건 아니겠지만

그 돈으로 외간남자들과 바람을 피면서 탕진하고 말았다. 

굳이 몰라도 될 일을 파헤쳐가며 알 필요는 없다고 본다.

 

시집에서 은행 빚도 갚아주고,

남한산성을 떠나 목동 시댁과 가까운 곳으로 다세대 주택 전세도 얻어주었다.

반 지하가 있고, 몇 계단을 올라가면 내가 사는 일층 집이 있다.

언덕빼기 일층이라 현관문과 안방 문엔 햇빛이 환했다.

빛이 좋아 화초를 즐비하게 키웠다.

현관 앞과 신발장 옆에 꽃을 심고 계단 가장자리에도 꽃을 심었다.

워낙 예쁘고 깔끔한 걸 좋아해서 현관부터 계단과 계단 밑 앞마당까지 수시로 물청소를 했다.

주인부부가 깔끔한 애기엄마가 들어왔다고 나를 참 좋아해서

짠돌이 주인부부가 식사 때 나를 자기네 집에 초대도 하고,

우리 집에 주인 남자가 꽃구경하러 왔다고 기웃거리면 차 한잔을 타주곤 했다.

주인 여자가 질투의 눈으로 힐끔거렸지만

남편은 외간남자가 들락거리든지 말든지 무신경했다.

안방창문을 열면 야트막한 산이 보이고, 그 산엔 아카시아나무가 많았다.

봄이면 아카시아 꿀 향기가 안방으로 신나게 날아들어왔다.

남한산성 개천 풀럭거리는 하수구 냄새가 아닌 꽃 향기는 나의 심신을 편안하게 했고,

남편은 다시 정신차려 산다고 취업을 했다.

그런데 이 취업이라는 것이 밤낮 지방으로 출장을 가는 일이었다.

일주일 내내 지방 출장중이라 나는 거의 딸과 단 둘이 주중을 보내야 했다.

이래서 어른들이 팔자, 팔자 하나보다.

내 팔자는 더럽게 외로운 팔자인가보다.

넘 외로워 우울증에 걸려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