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참 많이 기다렸던 사람. 바로 엄마다.
내가 초등학교 일 학년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엄마는 서울로 돈을 벌러 가셨다.
나는 외갓집에 남겨졌다. 외할머니 댁이라서 구박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엄마가 떠난 후에 한쪽 가슴이 무너져 내려 감당하기 힘든 허전함에
해가 저물 때까지 뽕나무 위에 걸 터 앉아 엄마가 넘어간 고갯마루를 쳐다보며 지냈다.
몇 달에 한번씩 엄마는 보따리를 이고 나타나셨고,
잠시 머물다가 다시 산을 넘어 서울로 가셨다.
데리고 가라고 한번도 울지 않았다. 날 데리고 갈 형편이 아님을 알았으니까.
나도 따라간다고 한번도 떼를 쓰지 않았다.
어린 자식을 두고 가는 엄마 가슴은 나보다 더 무너져 내릴 테니까.
엄마가 가고 나면 웃음기가 사라지고, 주눅이 들고, 외따로 떨어진 저 홀로 자라는 나무처럼
나는 항상 사람무리 속에 끼질 못해 어울리지 못하는 어른으로 성장을 했다.
출근을 하면 아무 말없이 나를 보내주는 개, 나의 멀건이.
“갔다 올게 기다려.”
내가 그렇게 끔찍하게 여긴 기다림이란 허전함을 말 못하는 동물에게 가르쳐 주게 되었다.
그러면 멀건인 내가 벗어 놓은 옷을 입에 물고 현관 앞에 깔아 놓고,
그 위에 앉아 내가 오기만 기다린다.
멀건이도 나처럼 한쪽 가슴이 저려가며 기다리는 것인지…
멀건이는 기다려, 란 말귀를 잘 알아 듣는다.
우리가 고기를 먹고 있으면 자기도 먹고 싶어 발을 동동 구른다.
“기다려!” 난 단호하게 명령조를 때려 붓는다. 단순한 지능을 갖고 있는 개에게도 기다림은 고문이겠지.
언제 산책을 데리고 나가나 눈치를 보는 멀건이에게 나는 또 명령을 한다.
“조금만 기다려! 엄마 설거지 해 놓고.”
내가 오길 기다리고, 맛있는 음식을 기다리고, 밖에 데리고 나가길 기다리고,
조금 멀리 산책할 주말을 기다리고.
개의 인생이나 나의 인생이나 기다림의 연속이 아닐까?
난 이제 엄마를 기다릴 나이가 아니다.
지금 나는 아이들을 기다릴 나이가 되었다.
퇴근할 딸 아이를 기다리고, 딸의 결혼을 준비하면서 결혼날짜를 기다린다.
방학을 하고 큰 보따리를 들고 집으로 올 아들을 기다린다.
아들이 오면 말없던 집이 술렁술렁한 말들이 창문을 넘어간다.
멀건이가 아들 바짓가랑이를 물고, 놀아달라고 으르렁거리고,
아들은 기타를 띠리링 팅팅 딩가 딩가가강 치면, 딸은 오! 늘었네, 하고
나는 젊은 연인들 쳐 줘, 하며 신청곡을 신청한다.
“다정한 연인이 손에 손을 잡고~~걸어가느은 길~ 이이~ 세상 모든 거 내게서 멀어져가도오오~~”
드디어 아들이 기타를 가방처럼 메고, 손가락엔 가짜 은색 반지를 몇 개씩 끼고,
머리를 길게 기르고 나타났다.
개는 좋다고 겅중겅중 뛰고, 나는 멋지게 커가는 아들 모습에 흡족한 미소를 짓는다.
어릴 적엔 엄마를 기다리고, 늙은 개는 길러준 엄마인 나를 기다리고, 나는 아이 둘을 기다린다.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