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늦게 밭에 다녀왔다.
밭 가장자리에 심어져 있는 뽕나무 열매를 따 먹고 올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가는 김에 완두콩 수확한 것을 밭 근처에 있는 지인에게 가져다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차를 지인 집 마당에 대놓고 밭으로 향한다.
작물들을 휘 둘러보고 눈에 띄는 풀들도 뽑아주며 뽕나무로 다가간다.
한데 이상하다.
거뭇거뭇 달려 있어야 할 열매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가지들도 정갈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흐트러져 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가지들 중도막이 휘어진 채 꺾여있다.
밭둑에 올려놓은 대나무들도 치워져있다.
자연스레 밑의 밭으로 시선이 간다.
매실 열매들이 보이지 않는 게 밭주인이 왔다간 모양이다.
매실을 따러와서는 내 밭의 것들에 손을 댄 듯하다.
기분이 묘하다.
수녀님 땅이라기에 좋은 이웃(?)을 만났구나 했던 게 생각난다.
수녀님=좋은 이웃.
공식처럼 자리잡은 내 안의 좋은 이웃은 작년 이맘때 보기 좋게 내 생각을 배신했다.
차를 회관 앞에 주차하고, 내 밭으로 가기 위해 수녀님 땅으로 들어섰다.
한데 이상했다.
수북하게 자라 있던 풀들의 밑둥이 꺾여 있었다.
누가 왔다갔나, 하고 고개를 드는데 갑자기 고함소리가 와장창 들려왔다.
"누구세요?"
칼날을 세운 듯한 목소리였다.
"예? 위에 있는 밭 주인인데요."
고함소리에 내가 당황하여 어물어물했다.
그랬더니 아니라며 매실 따러 온 거 아니랴고 나를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난 그 전 해 10월에 위에 있는 땅을 샀다.
차를 회관 앞에 주차해놓고 내 밭에 가는 중이라고 다시 말했다.
하지만 수녀님 여동생인지 언니인지 모를 여자는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0여분간 어이없는 말을 듣고 있다보니 은근히 화가 났다.
무시하고 내 밭으로 가서 완두콩을 거둬들였다.
콩을 거둬들이는데 옆밭의 아저씨가 오셨다.
아저씨와 얘기를 나누던 중에,
"수녀님 동생인지 언니인지 절 매실 도둑으로 몰아세우네요."
들으라고 일부로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욱 하고 감정을 돋운 것이 미안했던지 매실을 따가지고 가면서 미안했다나?
그래도 성당에 다닌다고 말은 꼬박꼬박 자매님 자매님이었다.
왜 그렇게 그 말이 버석거리게 들렸던지.
그러더니 작년 8월에는 우리 밭을 지나가면서 참깨가 걸리적거린다고 싹둑 잘라놓고 가고,
어제는 늘어진 뽕나무가 걸리적거린다고 휘어서 잘라놓고 가고,
자기들이 먼저 밭둑에 대나무를 올려놓기에 아예 수북이 쌓아놨더니 제 멋대로 치워버리고,
작년 이맘때 매실도둑으로 몰리면서 했던 생각이 다시 고개를 든다.
교회나 성당에 가서 미리 잘못할 것을 용서해달라고 빌고라도 오나?
성당에 다닌다며 자매님 자매님 하는 수녀님 동기간들이나,
집 지으려고 경계측량해서 말뚝을 박아놨더니
그걸 빼내고 우리 땅까지 침범해 들어와 논둑을 만들려 했던, 모태 교인이라던 옆집 아저씨나
왜 다들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지.
그냥 지나치려니 씁쓸함이 머물러 빠져나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