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한다고 한다.
‘사랑에 대하여’ 제목을 써 놓고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내가 사랑을 한적이 있었던가? 아님 없었는지 조차 말하기 민망해진다.
현재는 사랑을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사랑이 어떤 감정이었는지 너무 아득하기만 하다.
내 평생 지우지 못할 사랑. 내 가슴을 멍들게 한 사람을 용서할 수 없었는데,
현재는 지우지 못할 사랑도 없고, 용서 못할 사람도 없다는 게 맞는 해석인 것 같다.
원망해도 소용없지만 원망에 파 묻혀 산들 다 부질없음을 알기에
이것들이 잠시 내 앞을 가렸다 해도 내 길을 막을 순 없었다.
스물 초반 때 첫사랑이 있었다. 글을 썼던 사람. 너무나 멀리 살았던 사람.
순수해서 서로 감정 표현도 못하고 애만 태우다 헤어진 우리.
사랑이란 한 단어로는 대신할 수 없는 아련하고 아름답고 깨끗했던 그대.
현실을 극복할 배는 없고, 사랑 강을 건너지 못해 발만 구르다가 자연스럽게 헤어진 우리.
그게 사랑이었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어렸으니까, 너무 멀어서 만나기 힘들었니까, 현실은 결혼을 생각할 수 없었다.
서로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손도 못 잡고 돌아와야 했던…
첫사랑은 순수해서 잊혀지지 않는 것 같다.
그 사람을 잊을 수 없는 것은 그 시절이 그리워서, 이루어지지 못해서 잊혀지지 않는 것 같다.
남편은 사랑이라기 보다는 현실을 극복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었고,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좋은 직장과 좋은 집안과 가난한 내겐 너무나 선망의 대상인 부잣집 막내아들이었다.
빠르지도 이르지도 않는 나이에 우린 결혼으로 골인을 시켰다.
하지만 참 실속도 없고, 가정적이지 않고, 바깥에서 노는 걸 끊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결국은 결혼 15년만에 한 명의 여자와 아이 둘만 길거리에 던져두고
그 남자는 남편이란 이름을 지워버렸다.
그리고 다시 사랑이란 걸 해 보려고 남자를 쳐다보았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었다.
그 사람 말로는 내게 최선을 다하고 싶지만 일이 바빠서,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사랑이란 말 아래 나는 조정 당했고,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고 참고 기다렸지만
그건 결국 사랑을 빌미로 한 속박이었을 뿐 아무것도 아니었다.
진정한 사랑은 이런 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내 나이는 오십이 되었고,
그와 함께한 계절은 지지부진하게 흘러갔고, 세월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내가 먼저 뒤돌아섰다.
안녕이란 말도 안 했고, 물어도 대답하지 않고 침묵으로 대했다.
우린 애초부터 남남으로 만났으니까, 제자리를 찾아 남남이 되었다.
누구나 한번은 길을 잃고 누구나 한번을 길을 만든다.
그러나 빌어먹을! 나는 몇 번 길을 잃었고, 두 번 다시 이런 길을 만들고 싶지 않을 뿐이다.
사랑은 내게 머물지 못하고 늘 빈털터리였다.
글쎄, 시작할 때는 사랑이란 감정이 있었겠지만 지나고 나니 사랑은 아니었다.
사랑 따윈 미련도 없고, 기대감도 없고, 다시 하고 싶은 열정도 남아있지 않고, 추억도 없다.
누가 그랬다. 그게 그리우면 추억이고 나머지는 기억이라고. 내겐 기억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딸이 9년동안 만난 사람과 곧 결혼을 한다고 한다.
내겐 없었던 사랑이 그들이 사는 세상엔 존재하고 머물고 있는 것 같다.
그 둘의 만남 속에 그 사랑은 기억이 아닌 추억으로 남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