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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편과...


BY 편지 2015-04-19

전남편과...

전남편과 아이들과 한 달에 한두 번 가까운 곳으로 외출을 한다.

내가 유일하게 나가는 시간이고, 마음 가볍게 열고 편안한 휴식을 갖는 시간이기도 하다.

남편과 난 이혼한지 15년째가 된다.

이혼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제일 큰 이유는 빚이 많아 집이 날아갔고,

그래도 빚을 다 못 갚아서 가족이 흩어지게 되었다.

얘들 아빠는 행선지도 없이 쫓기듯 도망을 가고,

나는 친정에 들어가 장사를 해서 돈을 벌어 아이 둘을 데리고 좁은 집을 장만해 살게 되었다.

몇 년 동안 소식이 없던 남편이 오 년 만에 소식이 왔고,

이렇게 다 같이 만나 밥을 먹고 가까운 곳으로 외출을 할 수 있게 된지는 삼 년쯤 되었다.

남편과 남자로 만나는 것이 아니고

얘들 아빠로 아이들과 함께 만나게 된 지금은 제일 편하고 안정적인 것 같다.

서로 재혼을 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재혼할 기미도 보이지 않지만

우린 다시 한집에서 살 형편도 되지 않고, 그렇다고 부부로는 더욱더 가능성이 희박해

서로 타협점을 자연스럽게 찾다 보니 아이들과 함께 한 달에 한두 번 만나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하거나 외식을 하게 되었다.

남편이랑 만나서 제일 좋은 점은 아이들과 함께라서 좋다.

만약 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거나 재혼을 하면 지금처럼 편하게 가볍게 속에 것을

다 내 놓고 만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주변에선 그럼 같이 합치지 그러냐고 하지만 그건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일단 얘들 아빠는 경제적으로 힘든 상태고, 빚이 남아있고,

한 달에 우리식구가 살수 있는 월급을 줄 수 없는 상태다.

그리고 성격이 자유롭고 나와 맞지 않고, 그러다 보니 서로 혼자가 편하다.

합친다는 것은 차후의 문제고 지금이 서로 최상의 상태인 것 같다.

 

이번 주에 전남편과 딸과 개를 데리고 가까운 곳으로 꽃구경을 갔다.

벚꽃 잎이 흰눈되어 폴폴 날리는 나무 밑을 지나

거북이가 바위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는 호수를 바라보고

제비꽃이 잔디처럼 깔린 풀밭에 앉아 싸가지고 간 차와 과일을 같이 먹으며

이제 서른이 된 딸의 결혼문제와 시험공부중인 아들 아이 얘기를 하며

하늘높이 키가 큰 느티나무의 봄을 바라보았다.

새순을 달고 있는 나뭇잎이 얼마만큼 싱그러운지,

이 봄을 보고 느끼고 같이 할 가족이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우린 겉으론 표현하지 않았지만 다행이라 여기게 되었다.

일단 아이들이 엇나가지 않아서, 성실하게 자기 할 일을 잘하고 있어서,

제비꽃 밭에 앉아 아이들 얘기를 깊게 할 수 있어서

우린 부부로서도 남녀로서도 서로 기대하는 것은 없지만

아이들 얘기를 거짓없이 솔직하고 편안하게 흉도 볼 수 있고 칭찬도 할 수 있어서

정말 많이 감사할 일이고, 다행이라며 뒤돌아 보았다.

 

제비꽃은 땅바닥에서 자신의 삶을 살고,

느티나무는 하늘을 바라보며 자신 있게 가지를 뻗은 것처럼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살면 된다.

좀 부족해도, 좀 불편해도, 많이 서운했어도, 많이 원망했어도

우리 가족은 하늘아래 우리뿐이니까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살기로 했다. 

전남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