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대나무로 만든 효자손을 사왔다.
얼마 전 부터 이상하게 오른쪽 어깨쭉지가 가렵기 시작했다.
하필 왼손 손목골절로 수술하고 깁스를 하고 있는 바람에
오른쪽 어깨가 가려워도 긁을 수가 없었다.
참 견디기 괴로운 일 이었다.
이것 저것 꼬챙이를 찾기도 했고
저녁엔 남편에게 무량없이 넓은 등을 내밀었다.
거기 거기..조금더 옆..아니 아래...해도 남편은 내 가려운 곳을 정확히 찾아내지 못했다.
아휴...가려운 그 곳만 비켜가기 일쑤였다.
그러면 그곳은 더 가렵고 참을 수 없는 뒤척임만 더해졌다.
나이가 들면 부부는 서로 등 긁어주는 사이로
서로 가려운 곳을 긁어주면서 그렇게 지낸다고 한다.
나도 그만큼 나이가 들은 걸까?
손목수술하고 퇴원하니 오른쭉 어깨쭉지가 이유없이 아팠다.
앉아있기도 힘들 정도로 아팠다.
그러더니 등 아픈것은 없어졌는데 어깨쭉지가 그렇게 가렵다.
그래서 남편에게 효자손을 하나 사다달라고 부탁했다.
이렇게 우리부부에게도 그저 등긁어주는 재미로 사는 시간이 다가왔다.
우리집은 아이들이 어렸을때부터 저녁이면 남편과 두아들이 내게 등을 내밀었다.
아내손, 엄마손이 최고라는 거였다.
등이 벌겋도록 긁어주면 그제서야 세 남자는 잠이 들었다.
아내와 엄마의 손이 가야 등이 시원하다는 세남자
등을 긁고 엉덩이 한 번 쳐주면 웃으며 잠드는 세 남자를 바라보는 일도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
아이들이 결혼하고서도 간혹 엄마에게 등을 내밀었다.
역시 등 긁는데는 엄마가 최고라는 것이었다.
가려운 곳을 잘 찾아내 긁어서 그렇게 시원하다고 했다.
남편이 대나무로 만든 효자손을 사왔다.
700원을 주었다고 한다.
메이드 인 차이나 지만 남편손과 차이가 없다.
오히려 긴 효자손을 들고 가려운 곳을 찾아 긁으니 참 시원했다.
이런 효자가 없다.
누가 나의 가려운 곳을 이렇게 시원하게 긁어줄 수 있을까?
선비의 아내로 늘 한복을 입고 사시던 친정어머니
칭칭 동여맸던 치마말기를 푸는 저녁 어머니는 아버지께 등을 내미셨다.
그러면 아버지는 하루종일 단내나는 세상에 꽉 매여졌던 어머니의 삶이 가여워
정성스레 어머니 등을 긁어주셨다.
두분의 정이 그렇게 녹아내리면..어머니는 야이션햐..아이 션햐로 화답 하셨었다.
얼마나 시원하셨을까?
어머니의 가슴까지 묶어야 했던 고단한 시간들이 남편의 손에 의해 풀어지고 해독되었으니..
그 정겨운 모습도 이젠 볼 수 없는 정겹고 눈물겨운 풍경으로 남았다.
가려운 곳을 잘 긁어주는 것
정말 시원한 일이다.
한 후배 개그우먼이 결혼할 때 주례를 본 조영남씨는 "부디 평생 효자손 발명품이 필요 없기를 바란다"며
서로 등을 긁어주며 평생 함께 하기를 바란다는
진심을 담은 말을 남겨 이경실은 물론 하객들에게도 많은 웃음을 남겼다고 한다.
부부가 오래 해로하면서 나이먹어 거칠어지고 푸석해져서 가려운 등을 서로 긁어주는 일
효자손 노릇이 가장 필요하다.
몇년 전,새해 소망을 나타내는 사자성어로 직장인들은 마고소양(麻姑搔痒)을 꼽았다고 한다.
손톱이 긴 선녀가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는 뜻의 마고소양은 모든 일이 뜻대로 되길 바란다는 의미였단다.
직장인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일은 정말 월급봉투가 두둑해지는 것이고
정년을 보장해 걱정없이 직장엘 나가는 일 일 것이다.
손톱이 긴 선녀가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일 얼마나 행복하고 시원한 일 일까?
나도 이제 효자손이 필요한 나이가 되었다.
남편이 있을때는 남편에게 등을 내밀지만 남편이 출타 했을 때는 정말 이 효자손이
내게 최고의 효자가 될 것이다.
혼자 사는 늙은 아버지에게 새장가를 가면 어떻겠냐는 효자아들 말에
효자손과 전기장판이 있는데 새장가가 뭔 필요가 있느냐고 했다는 아버지의 말이 맞는 것같다.
나이들어 가려운 등을 긁을 수 있는 효자손이 진짜 효자다.
그러나 아들들에게 이 말은 꼭 전하고 싶다.
아들들아..네 어미가 이제 효자손이 필요한 나이가 됐다는 것은
네 어미가 그리 젊지 않다는 것이고
수시로 등이 가렵다고 하는 것은
네 어미가 아들 며느리 그리고 손주들을 기다리는 것일 수 있으니
딱딱한 효자손 너무 믿지 말고 말랑한 손을 내밀어 다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