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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시장 나비 한 마리


BY 편지 2015-01-12

 

 

나비 한 마리가 시장 골목을 날아가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바다가 보이는 옥상 의자에 노인 부부가 앉아있다. 

서로 꿈이 뭐였냐고 물어본다. 할아버지의 꿈은 선장이라 했다.

 

장면이 바뀌어 눈보라가 치는 흥남부두.

피난민들이 바닷가에 빼곡하게 모여 있었다. 사람 같지 않고 남극에 있는 동물 같았다.

앞에는 바다, 바다엔 철수중인 미군 군함, 뒤엔 중공군이 쳐들어오고, 

뒤로 물러 설수도 앞으로 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훌륭한 미군 선장의 명령으로  배에 있던 무기를 버리고 피난민들을 태우게 되었다.

이 배를 타지 않으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

거기서 업고 있던 여동생을 잃어버리고, 

아버지는 여동생을 찾으러 가면서 가족과 헤어지게 된다.

주인공 어린 소년은 가장이 되었고, 

어머니와 남동생 여동생과 함께 부산으로 피난을 오게 된다.

 

 

부산에서 고모가 장사하고 있는 꽃분이네 잡화점에 얹혀살면서 

소년은 친구와 함께 구두닦이를 하게 된다.

그리고 독일 광부로, 월남전으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힘든 인생을 살게 된다.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길 때마다 주인공은 아버지를 회상한다.

“아부지 사는 게 마니 힘 듬니더. 억수로 힘이 듬니더.”

꽃분이란 가게를 지키기 위해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

어머니와 동생들과 흥남에서 헤어진 아버지와 여동생을 기다리면서

어린 소년은 고집불통 할아버지가 되어갔다.

 

 

이 영화 ‘국제시장’을 친구와 종로 3가에서 봤다.

처음엔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냥 영화 한편 보자고 해서 봤는데.

처음 시작부터 울었다가 웃었다가 가슴 조여 가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봤다.

감동이 부산바다처럼 밀려오는 영화였다.

 

 

일주일 뒤 아들이 말년 휴가를 나왔다.

국제 영화 재미있다고 했더니 별로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한국영화는 나중에 비디오로 봐도 된다고 하면서.

그러다가 적극적인 내 홍보로 얘들 아빠와 아들이랑 국제시장 영화를 또 보러갔다.

같은 영화를 영화관에서 두 번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옆에서 아들이 안경을 벗으며 눈물을 닦기 시작했다.

그럴 줄 알고 준비한 휴지를 아들에게 건네주었다.

아들은 보길 잘 했다고 한다. 

막연하게 공부했던 옛날 일들을 자세하게 알게 되어 감동했다고 한다.

 

난 영화를 잘 보지 않는다.

그래서 황정민이란 배우가 연기를 잘 하는 줄 몰랐다.

대한민국 평민처럼 생긴 배우. 

부산 바닷가 막노동꾼 같았고,

독일 광부의 삶에 황정민은 그냥 독일 광부 그대로였고,

그 시절의 총각, 남편, 아들, 아버지, 할아버지 역할까지

그 삶 그대로를 살고 있는 대한민국 남자 같았다.

전쟁을 겪고, 가장으로도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한 남자의 인생이야기.

 

 

이 영화중에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

어렵고 힘든 시절을 자식이 아닌 내가 겪어 다행이라는....

 

 

지금 우린 다행이다.

아들들을 군대에 보내고 있지만

끔찍한 전쟁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지금 우린 잘 살고 있다.

음식점에서 설거지를 하든, 청소부를 하든, 마트에서 일을 하든

성실하게만 살면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으니까.

지금 우린 부자다.

좁아도 따스한 집이 있고, 집집마다 차도 있고, 다들 좋은 옷도 입고,

매일 샤워를 할 수 있다.

육칠십 년도에는 돈이 없어 고기를 먹기 힘들었지만 

요즘은 건강을 위해 뚱뚱해질까봐 고기를 안 먹으니까.

 

 

영화 처음에 등장했던 나비는

흥남부두에서 업고 있던 여동생을 잃어버리면서 

주인공 어린 오빠 손에 남은 건 찍어진 한복 소매 한 자락.

어머니가 한복을 만들면서 소매 끝에 수놓았던 노란나비 한 마리.

그걸 끝까지 간직하고 있다가 잃어버린 여동생을 만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다. 

그 노란나비가 부산 국제시장을 날아다닌다.

나비가 날아가면서 과거의 기억으로 기억으로 되돌아간다.

대한민국 한 남자의 파란만장한 인생의 기억들 속으로 나비 한 마리 팔랑팔랑 날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