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소 소집일 때 윤이와 나는 울지 않았다.
다른 부모들과 아들들은 눈물이 맺힌 눈으로 서로를 쳐다보고 있을 때
아들과 난 울고 있는 그 사람들을 멀뚱멀뚱 쳐다보다
윤이도 담담하게 손을 흔들고, 나도 덤덤하게 나라에게 아들을 맡겼다.
내가 울지 않고 맡길 수 있었던 건 누구나 가는 길이기 때문이었고,
윤이가 울지 않은 이유는 그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우린 서로를 몇 번씩 뒤돌아보며 손을 흔들고 엷게 웃어주는 걸로 마무리를 했다.
한 달 반의 훈련 기간이 끝나고 윤이 부대에 갔을 때
군기가 잡혀 있다는 말을 말로만 들었었는데
윤이를 보니 군기가 딱 잡혀 있다는 말이 뭔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내가 계급장을 달아주러 갈 때까지
(수료식이 끝나면 이병 계급장을 부모가 직접 달아주는 시간을 준다.)
그 자리에서 한발작도 움직이지 않았고,
나를 보면서 차렷 자세에서 입만 웃고 계급장을 들고 있는 손만 내밀고 있었다.
이병 작대기 한 개를 달아 줄때까지도 윤이는 차렷 자세였다.
울지 않다가 처음으로 눈물이 나왔다.
윤이를 데리고 세상 밖으로 몇 시간동안 나와 있는 동안에도
윤이는 눈에 군기가 또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군기가 쇠막대기처럼 단단할 때, 단단한 말투로 “엄마 사랑해요.” 하면서 날 꼭 안아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눈물이 나와서 일렬로 쫙쫙 맞춰 심어 놓은 논만 쳐다보았는데,
군기가 꽉 들어찬 아들들이 연병장에 줄 맞춰 서 있던 모습이랑 비슷해서 더 눈물이 나왔다.
첫 휴가를 나오던 날.
겉표지가 군복무늬랑 똑 같은 수첩에 먹고 싶은 음식이 적혀 있었다.
엄마표 삶은 돼지고기, 엄마표 여러 가지반찬, 제철과일, 아메리카노, 찹쌀탕수육.
수첩에 적힌 대로 먹으며 하루에 몇 번씩 부대에 보고 전화를 했다.
“출타자 이병 이윤 휴가 보고 합니다. 부모님이랑 같이 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단결.“
삼박사일동안 휴가 보고만 하다가 가는 것 같았다.
보고 할 때 마다 우리 식구는 물론, 개까지 입 밖으로 목소리를 안냈다.
일병이 되었다. 변한 건 없다.
182센티에 60킬로라서 몸무게 미달로 B등급으로 현역에 합격되었었고,
몇 달 만에 몸무게가 10킬로가 불어 70킬로가 되었다는 것만 빼고.
중간 중간에 냉동식품과 과자를 엄청 먹었다는 것만 빼고 변한 건 없었다.
상병이 되어 돌아오던 날 윤이는 작대기 세 개만큼 군기가 빠져 있었다.
머리가 좀 길어있었고,(휴가 날짜에 맞춰 머리를 길렀단다.)
우리가 보기엔 일병 때 머리나 상병 때 머리가 그게 그거 같았다.
머리 좀 길렀다고 젤을 잔뜩 바르고 정장까지 입었지만
화장품가게에서도 음식점에서도 군인아저씨인줄 알아봤다. 하하하
차라리 군복 입은 모습이 어색하지 않고 더 멋있는데 말이다.
너무 웃겨서 딸이랑 막 웃었다.
취미인 기타를 가지고 갔고, 책 읽는다고 책도 가지고 갔다.
무식하면 안 된다고 민간인일 때 책 좀 읽으라고 해도 안 읽더니 책을 읽기 시작했다.
군대는 책 읽기 참 좋은 곳인가 보다.
올 10월에 드디어 최고참 병장을 달았다.
병장을 달고 오더니 왼쪽 어깨가 내려가 있었다. 무겁다나 뭐라나.
보고 전화도 간단하게 한다.
“00냐? 어 그래. 집에 잘 도착했다고 말씀드려. 그래 수고.”
목소리도 가을날씨만큼 가볍고 얄밉게 낭만적이다.
가벼워지고 있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몸무게가 65킬로라고 한다.
제대할 때쯤이면 원래 제자리로 돌아올 것 같다.
먹고 싶은 음식 같은 건 적어 오지도 않는다.
병장이 된 윤이는 무겁게 젖어 있던 마음이 가을 햇살에 바삭하게 마르고 있다.
이년이란 세월도, 군기 잡혔던 마음도, 간식으로 불었던 몸무게도
가을곡식처럼 바삭하게 마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