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식눈에 뜨거운 눈물
엄마..
나에게 있어 엄마는 무엇일까.
엄마가 요즘 식사도 잘 못하시고 기운이 통 없으신 채
잠만 주무신다고 내동생 선자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난번 아버지 생신때 아닌게 아니라
조금 치매가 있으시긴 해도 묻는 말에 조금이나마 응수하곤 하셨는데
이젠 그마저도 맥을 잃으신 듯 잠만 주무신다 하시니
제발 이 추운겨울에 별일 없길 염원해 본다.
엄마가 쇠잔해져서 돌아가신다 해도 나는 그다지 슬플 것 같지 않았다.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아이들 키우느라 진땀을 흘리며 애간장을 태울 때
정신적 육체적 해방구는 엄마가 있는 친정이었다.
친정에 가면 엄마가 썩 잘해 주시는건 아니지만
엄마얼굴만 봐도 큰 위로가 되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엄마가 친정에 온 딸을 위해 음식을 따로 해 주신다거나
암것도 못하게 묶어두다시피 몇날 몇일을 푹 쉬게 하시는 타입은 더더군다나 아니었다.
갈 때마다 엄마는 지인들과 등산을 간다거나 어울려 노는걸 좋아하셨다.
하지만 엄마는 피곤한 내 육신의 무한한 안식처이자 정신적 지주였다.
해서 만약 내 인생에 엄마가 부재한다면 아마도 따라 죽으리라 여겼을 정도였다.
그런 엄마가 어느때부터인가 은근히 원망스러워 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얘들 키우면서 힘들 때.. 특히 얘들아빠와 풀리지 않는 갈등속에서
애태울 때 왜 엄마는 이런 물건을 분별하지 못하고 결혼을 시켜
내게 이 고생을 시키는가 하여 괜히 미워지기까지 하는 것 이었다.
마치 잘 되면 내 탓 못되면 조상 탓이 듯이 말이다.
얼마나 해괴망칙한 논리인가 말이다.
그런 은근한 원망과 미움이 쌓이고 싸이더니
어느새 엄마에 대한 애틋한 갈망이 서서히 엷어져 가는 것이었다.
엄마가 늙어 힘 빠져 오줌지리며 어떻게 될지 모르는 아연한 상태인데도
내 마음은 뭐 해 볼 것 다 해보고 늙을 말년에 호위호식하다 돌아가시는데
웬 걱정..이러면서 그저 덤덤할 뿐이었다.
그런데 아침 출근전 갑자기 “내 자식 눈에 뜨거운 눈물 흘리게 하는 사위자식은
절대 용서 못한다.“라는 엄마의 어록이 문뜩 떠오르면서
가슴이 싸아해져 오는게 아닌가.
그 어록은 둘째언니 이혼할 무렵
친정에 와서 눈물바람하는 딸을 보고 분노한 엄마의 입에서
절규하듯 내 뱉은 말씀이었다.
내 자식눈에 뜨거운 눈물...
내가 살면서 남편이라는 사람에게 실망도 해 보고
원망도 해보면서 눈물을 흘리곤 했는데
만약 내 딸 태희가 결혼해서 뜨거운 눈물흘리며
내앞에 왔을 때 내 가슴은 아마도 짓 뭉개져 버릴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가을비가 촉촉이 내리는 오늘
마치 엄마의 뜨거운 눈물이듯
내 가슴이 엄마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한 하루였다.
엄마!
그저 당신은 제 마음의 영원한 안식처입니다.
엄마의 뜨거운 눈물을 이제 제가 흘려 봅니다.
엄마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