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기뻐서 난리부르스라도 춰야 할 판이다.
2학기에 아이들 둘 대학 생활비며 큰 딸 작은 옷가게 하나 열어 주느라고
비상금에 적금까지 다 깨버린 상태라 무일푼이 되고 말았다.
생활비를 아끼고 아껴서 돼지를 살찌워 둔 걸 휴가 때 쓰겠노라 감춰뒀었는데
휴가는 아직이고 우선 당장 급한 일부터 해결하다보니 돼지를 잡았다.
일년 전부터 휴가비를 따로 마련한다고는 했지만 아이들 일이 생기면 또 날아가고 만다.
그래서 올 해는 가까운데 가거나 산에 가서 풀이나 뽑자고 뜻을 모았다.
처음에는 약이 올랐다고 해야 옳다.
일년에 딱 한번인데....
벼르고 별러서 휴가다운 휴가 한번 가자는데 이게 뭐야~
산에 가서 풀이나 뽑고 라면이나 끓이고 신나면 고기나 두어번 꿉자고?
에이...시시하다.
속으로만 그러고 남편이나 아이들한테는 짐짓 의연한 척 대범한 척 하고 지냈다.
뭐 기회는 다음에도 있으니까.
뭐 올해만 휴간가?
그까이꺼 담번에 좋은데 가지 뭐.
그래도...서운하다.
잊었다.
깨끗하게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내 입으로 휴가 이야기는 안 꺼냈다.
그 날도 바깥 일을 보고 트럭에 실려 오는 길이었다.
차만 타면 자는 멀미에 시달리느라 깊이 잠들었던가 보다.
주차 브레이크 소리에 잠이 깼다.
대충 그 날 일을 끝내고 집으로 올라 와
샤워를 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 있고 막 잠이 들려는데 남편이 두툼한 봉투를 들고 들어왔다.
\"자 이거.\"
\"뭔데요?\"
\"내가 당신 휴가비 다른데 다 쓰고 마음이 아프더라구.
가족들을 위해 이렇게 애 쓰는데 휴가비 내가 잘라 먹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박봉을 쪼개고 또 쪼개 사는 거 내가 다 아는데 이런 당신한테 휴가비까지 뺏으면 안되지.
아까 차에서 지쳐 자는 당신 얼굴보는데 눈물이 나려고 그러더라.
이 돈 우리 둘 휴가빈데 당신 다 가져.
그리고 가고 싶은 나라에 갔다 와.
당신 저번에 서유럽 갔다 오고 얼마나 신나했어?
이번에는 그만큼은 안 될 것 같고 가까운 동남아 어디 다녀 와.
산에는 당신 여행 다녀 올 동안 내가 가서 말끔히 다 치워 놓을께.
미안하다, 당신 여태까지 고생만 시켜서...\"
아~
깨끗하게 포기하고 그냥 산에나 가려고 했는데 앗싸~~~
둘이 가까운 나라에 가도 되는데 자기는 산에 남을테니 부담 갖지 말라네~
서유럽 갈 때는 몇년을 모아서 갔는데 이 어인 횡재???
어디로 갈꺼나....안 가면 이 돈 또 어딘가에 쓰일거고 날으자날라~
솔직히 전에는 뭐든 다 가족 중심으로 살았다.
근데 지나고나니 너무 허무해.
이제는 조금씩 나를 위한 투자를 해야겠다.
애들 다 키워놨고 (둘째는 내년이면 대학 졸업이고 막내는 2년만 더 하면 되고)
눈치 안 보고 편히 발 뻗을 집 있으니 세상 부러울게 없는 소시민이 조금씩 간이 커 진다.ㅋㅋㅋ
인터넷으로 여행지 정보를 훑어보면서 마음은 벌써 비행기에 올라 있다.
갈증처럼 낯선 나라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한다.
11월이면 비수기라 저렴하게 다녀 올 수 있을 것 같다.
행사 다 끝내 놓고 편하게 다녀와야겠다.
여행지에서 최대한 쇼핑은 안 하고 순수경비만 쓰고 올 참이다.
나 혼자 보내주는 것고 고마운데 알뜰여행을 하고 와야지.
나이들어 되새김질 하듯이 오늘을 추억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