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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이 쓰는 편지 (4)


BY 편지 2014-10-06

평일 날은 일을 하지만 주말엔 오일 근무라 이틀 동안 쉬게 된다.

그런 날이면 난 늦은 밤까지 책을 본다.

마음에 드는 책을 읽게 되면 새벽까지 책을 보게 되는데 그 시간이 참 행복하다.

그런데 요즘 난 완전 다른 곳에 꽂혀, 꽂혔다고 표현해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은 반납연기까지 했는데도 읽지를 않아 연체중이다.

그렇게 좋아하던 책까지 끊게 만든 것은 뭐냐 하면 위너”!

위너가 뭐냐 하면? 그 이름도 멋진 위너라는 아이돌그룹이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난 가요를 좋아한다.

젊었을 땐 대학가요제 노래에 빠졌었고, 전영록, 송골매, 산울림을 좋아해서

라디오를 들으며 테이프에 녹음을 해서 이불 뒤집어쓰고 매일매일 들었고,

라디오방송국에 엽서도 여러 번 보내기도 했었다.

 

그러나 나이 들어 가면서 사는 게 하도 바빠 노래를 별로 듣지 않았다.

대부분 노래들이 허구헌 날 사랑타령이나 하고

이별의 청승만 떨고 있어서 심드렁하니 들어도 그만이어서 듣지를 않았었다.

 

근데 위너의 노래를 딸이 유투브로 보여 줬는데....

이 느낌은 예사롭지 않았다.

거울 속에 내 모습이 공허해~~ 끝이 났네요~ 나의 그대여 어디 있나요~~”

가을 느낌이 나는 노래가 정말 가슴을 흔들었다.

리더보컬인 강승윤이 노래를 정말 잘 불렀고,

다섯 명이 조화를 이루며 앞으로 나왔다 뒤로 빠졌다 하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내가 본 아이돌그룹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들었다.

무대 옷도 평상복 그대로 입고 나온듯했고, 얼굴이나 머리도 과하게 꾸미지 않고,

오로지 노래로만 승부사를 띄운 아이돌가수들이었다.

 

그리고 내가 집중적으로 본 사람은 이중에서 김진우였다.

작년에 우연히 엠넷 방송을 보다가 예쁘장하게 생긴 젊은 남자가

배를 타고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임자도 출신인 어부의 아들. 아버지와 아들은 보자마자 끌어안고 우는데,

나도 같이 눈물이 나왔고,

이게 뭔 방송인가하고 봤더니 윈이라는 베틀프로였다.

YG에서 두 팀으로 나눠 신인남자그룹을 만들려고 하는데,

두 팀이 대결을 해서 이긴 팀이 내년에 위너라는 이름을 걸고 활동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땐 뭐 저런 잔인한 방송이 있나 하고 잊어버렸었다.

그런데 뇌리 속엔 임자도 출신의 어부의 아들은 조금 남아 있었다.

제일 오랫동안 연습생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해서

잔인하지만 한편으론 저 젊은이가 속한 A팀이 되면 좋겠군 하고 말았다.

 

일단 위너는 노래가 좋다.

그리고 노래를 정말 잘 부른다. 강승윤은 물론 남태현도 노래를 잘 부른다.

나는 가수는 뭐니 뭐니 해도 일단 노래를 잘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화려한 조명이나 춤이나 옷을 가지고 포장하지 않았다 위너는.

그리고 다섯 명이 조화를 잘 이뤘다. 매력이 있다.

그리고 섬소년 김진우가 난 좋다. 남성적인 매력으로 좋다는 게 아니다. 그런 건 전혀 없다.

위너에서 제일 비중이 없다 김진우는.

임자도에서 아버지와 같이 울던 모습이 남아 있어서 김진우를 눈여겨보게 된 것이다.

 

김진우는 노래도 화음만 넣고, 춤도 잘 추지 못하고, 키도 제일 작다.

다른 멤버들은 가사도 쓰고 곡도 만들었지만

김진우는 이번 앨범에 자신의 곡이 없었다.

인터뷰 때 말도 못하고, 생방송중이면 실수도 제일 많이 한다.

맏형이라지만 뒤에 서서 있을 뿐 앞에 나서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김진우는 마음이 참 여리고 착하다.

뒤에서는 잘할지 몰라도 앞에 나서면 떨려서 잘하던 것도 못하고,

떨려서 아는 것도 잊어버리는 성격이다.

일등만 기억하고 일등만 성공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김진우는 다섯 명 중에 꼴찌일지도 모른다.

 

내가 왜 김진우를 눈여겨보면서 같이 눈물이 나오고 같이 떨리는지

그건 나를 닮았고 우리 아이들을 닮았기 때문이다.

일등만이 그 그룹을 지배하고 리드하고 치열한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건 나도 안다.

그러나 너도 나도 일등만 하려고 하면 세상은 무서워진다.

세상은 삭막해지고 살벌해지고 나머지 사람들은 좌절하고 비참해진다.

 

휴일 날 개와 함께 공원으로 산책을 갔다.

벤치에 앉아 위너 노래를 틀어 놓고,

높은 하늘을 보았고, 멀리 고층 아파트를 보았고, 가까이 나무를 보았다.

그리고 땅위에 풀꽃이 예뻤고, 발아래 돌멩이를 보았다.

이렇게 조화를 잘 이루고 살아야 세상이 돌아간다.

최고 높은 사람도 있어야하고, 땅위에 풀도 있어야 사람이 살 수 있는 것이다.

 

김진우는 별명이 두 개 있다. 임자도의 왕자, 꽃사슴.

섬소년 답지 않고 피부가 하얗고 눈이 크고 순수하고 착하게 잘생겼다.

 

쉬는 날이 많았던 이번 주에도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이번 주엔 꼭 닦아야지 하고 미뤄 논 싱크대처럼 저 만큼 미뤄 놓고,

유투브를 눌러 위너의 노래와 방송을 보았다.

기름때 찌든 부엌살림을 닦아야지 하면서 미뤄두다가 몇 주 지나면 못 견뎌 닦듯이

요즘은 손가락으로 위너만 밤새 뒤져보지만

몇 주 지나면 내 좋아하는 책을 뒤적이게 되겠지. 그러겠지.

 

근데, 한마디만 더. 위너 너희 정말 노래 잘 한다.

김진우야(아들과 비슷한 나이니까) 다섯 명 중에 비중이 제일 없다고 속상해하지 말고

떨지 말고 부담 갖지 말고, 앞으로 익숙해지면 누구보다도 잘 할 수 있어.

넌 정말 잘 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