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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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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 3일 섬여행


BY 그대향기 2014-08-24

늦은 장마가 지리하다 못해 걱정스럽다.

잠깐 한눈을 팔기라도 하면 여기저기에 곰팡이가 생긴다.

습도가 높으니 은근히 짜증도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던 차에 갑자기 잡힌 섬여행이었다.

 

여름 수련회를 중간쯤 해 치우고 한 주간 비는 시간에 섬여행을 다녀왔다.

욕지도라는 섬인데 은퇴하신 노목사님의 고향이라 초대를 받았다.

섬의 작은 교회에서 잠을 자기로 했고 밥도 그 주방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그 주방에 뭐가 준비되어 있는지 일일이 물어 볼 수가 없어서

기본적인 것은 놔 두고 압력밥솥(당뇨가 있는 할머니들 잡곡밥 때문에)은 가져 가기로 했다.

 

양념부터 밑반찬까지 준비하려니 준비물이 엄청났다.

모시는 할머니들하고 도와 주실 분 두분과 노목사님 부부까지 모두 11명.

도착 하는 첫날 밤에 구워 먹을 쇠고기며 불판 숯까지 박스박스....

준비하는 당일부터 2박 3일 여행 하는 내내 비가 왔다.

줄기차게.

 

불고기파티도 비가 오는 숙소 앞 처마 아래에서 했고

섬 일주도 비을 맞으며 차를 몰았다.

경치 좋은 곳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싶어도 무슨 비가 그렇게도 줄기차게 주룩주룩 오는지...

구경은 고사하고 방에서 뒹굴거리고 토크쇼도 아닌 잡담에 공기돌 놀이나 했으니.

때 되면 밥을 했고 아니면 전복죽이나 해물짬뽕 같은 욕지도의 명물이라는 음식을

사 먹으러 나가는게 여행의 전부였다.

 

문제는 잠자리였다.

처음에는 펜션을 빌려서 자기로 했는데 성수기도 아닌데 가격이 너무 비쌌다.

그럴바에는 시골교회에 헌금을 하고 그냥 교회 교육관에서 자기로 했다.

주방시설도 큰 불편함 없이 돼 있고 화장실과 샤워시설도 몇 걸음만 걸으면 되고.

하루 이틀쯤 몇가지 불편은 참기로 하고 잤는데 그게 아니었다.

 

작은 불편함도 못 참아냈다.

여행 중에 집에서처럼 편하게 푹...하고 싶은데로 다 하고 자려니....

누구는 중간에서는 못 잔다, 누구는 밤에 화장실 자주 가야하니 꼭 문간에서 자야 한다

다른 사람들 다 깔깔대며 웃고 신나하는데 조용히 하고 잠 좀 자자,

식당에서 주문을 받을 때도 나는 회가 안 좋다 나는 죽이 싫다....

 

여러 사람이 떠난 여행에서 각자의 불만들을 다 토해 놓자니

식당에서도 의견일치를 보지 못해 꼭 타협을 봐야만 했다.

식사초대를 받고 갔을 때는 참 난감했다.

마음에 안 들더라도 한두끼 쯤이야 좀 참아주시지..하는 아쉬움이 컸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불평불만이 많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일행의 시한폭탄이었다.

 

무슨 일에든지 사사건건 토를 달았고 좌지우지 혼자서 종횡무진 바빴다.

처음에는 귀담아 듣는 척 하다가 모두들 그 사람의 말을 흘려 듣게 되었다.

심지어는 일행으로 온게 피곤하다고 까지 했다.

귀가 따갑고 시끄러워서 한자리에 동석하기가 꺼려 진다고.

본인은 그걸 모르는 눈치였다.

 

알아듣게 일러줘야 옳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 많았다.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려면 같이 여행을 떠나보라고 했던가?

배려와 봉사 그리고 인내심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일들이 잦았다.

수동적인 행동과 능동적인 행동이 여행을 즐겁게도 하고 피곤하게도 만들었다.

단체여행에서는 적당한 침묵도 도움이 된다.

 

비내리는 밤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위에서 하룻밤 잔 추억은 오래오래 즐거울 것이다.

노목사님의 센스있는 배려로 우리 부부만 하룻밤 자게 되었는데

밤 새 비바람이 휘몰아쳐서 혹시나 배가 풀려서 바다 한 가운데로 표류하는건 아닌지

걱정이 되면서도 뭍으로 안 나오고 간 큰 선상 노숙을 한 추억.

그렇다고 뭐 야한 밤을 보낸 것도 아니면서 순전히 추억 만들기로.ㅎㅎㅎ

 

통영에서 약 1시간 배를 타고 들어가는 섬이었는데 물이 참 맑았다.

바다 밑이 말갛게 다 보였는데 섬 주변인데도 무척 깊었다.

새벽에는 잠깐씩 비가 그치기도 했는데 해무가 피어오르는 새벽 바다의

푸른 고요는 잊을 수가 없다.

철저히 외롭고 완전하게 고독한 기분을 일 것 같은 고요한 침묵.

 

날씨가 맑았더라면 더웠을건데 비가 온 날씨라 시원하기는 했다.

덕분에 바닷물에 발 한번 제대로 못 담궈보고 돌아왔다.

남편은 낚시도구만 두 가방 챙겨가더니 우중에 손맛 두어번 느껴보고 철수.

비를 맞으면서도 일행들을 위해 잡은 고동 한됫박 정도는 바닷물에 담궈 놨다가

잡은 고기가 도망가면서 같이 자유를 찾아 떠났단다.

 

가을 산은 가난한 친정보다 낫다는데

비가 오는 가을 바다는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

아~있다.

나이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는 말씀 새겨 둘 말이다.

그리고 언제든지 함께 여행하고픈 사람이 되려면 여행 중 발생하는

크고 작은 불편함 정도는 여행의 필수조건쯤으로 알고 즐겁게 참아내는 인내심도 가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