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634

그녀는 고민중


BY 불량주부 2014-08-13

얼마 전 우리 아파트에 불이 났다.

비상벨이 울리고 타는 냄새가 바람을 타고 우리집 안으로 쓰며들고 있었다.

비상벨 소리와 냄새를 현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아들 방, 그곳에 있던 아들이 알게되었다.

 

나는 집에서는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다.

오랜 습관이라 가족들은 모두 이해를 하고 지낸다.

하지만 약속없이 찾아온 방문객이 초인종을 누를때면 나는 당황한다.

황급히 안방으로 피신을 가야만 했다.

 

불이난 그날도 어느때와 마찬가지로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10년은 족히 넘은 중간 중간 미어진 헐렁한 민소매 원피스 차림에 부스스한 모습으로 거실에서 리모컨과 싸우고 있었다.

아들이 엄마 우리 아파트 불났나봐소리를 질렸고, 나는 속옷을 입지 않고 있었던 불량복장 때문에 이 위급한 상황에도 밖으로 재빨리 나갈 수가 없었다.

안방으로 황급히 들어갔지만 원피스를 벗고 속옷을 입고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면 시간이 많이 걸릴것 같아 그냥 손에 잡히는 점퍼를 원피스위에 하나 걸치고 아들과 함께 계단을 타고 뛰어 내려왔다.

현관문을 나오던 남편은 딸이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면서 딸 이름을 목이 터져라 부르면서 다시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8층에서 1층까지 어떻게 뛰어 내려왔는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오로지 살아야 한다는 생각 하나 뿐이였다.

아파트 광장에 나와 보니 불이난 동은 우리동이 아니였다.

우리 뒷동 꼭대기층에서 불이난거였다.

 

소방차, 경찰차, 119구급차까지 출동을 하고, 다행이 빨리 발견하고 신고하여 소방대원들의 신속한 출동 및 진압으로 큰 피해없이 20분여 만에 불이 진압되었다.

아파트 광장에 사람들이 엄청 많이 모였다.

아파트 전체가 화재로 대소동이 벌어진 시간에 자기집에 그대로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도 불이난 그 동에서 말이다. 참말로 간이 큰 사람들인지, 미련한 사람들인지, 아님 생각이 없는 사람들인지, 나는 불이 난 맨 꼭대기층 집주인보다 아이들을 데리고 거실과 베란다를 왔다 갔다 하면서 아파트 광장에 서있는 119구급차랑 소방차를 내려다 보고 구경하는 그 사람들이 더 안되어 보였다.

정말 큰 화재였다면 얼마나 위험한 일이겠는가

 

화재 이야기에서 이제 나의 패션으로 이야기로 넘어가볼까 한다.

그날 내 모습은 참 과관이 아니였다.

헤어스타일은 빗질도 않된 부스스한 머리가 고물줄에 포박을 당하고 있었고,

바탕색이 진분홍색인 원피스에 손바닥 만 한 꽃무늬가 전체 그려져 있는 민소매 면 원피스위에 하늘색 등산복 고어텍스 점퍼를 걸치고 파랑색 아쿠아슈즈를 신고 있었다.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오늘의 베스트 드레스상은 내가 받아야 당연할 것 같았다.

순간 창피함이 밀물처럼 밀려들고 있었다.

창피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모니다

 

황급히 집으로 올라왔어 점퍼를 벗어 옷장에 걸어두면서 옛날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브레지어를 하지 않고 출근한 적이 있었다.

시내버스에서 뭔가모를 허전함에 놀라 가슴에 손을 살짝 올려보니 있어야 할게 없었다.

황급히 회사 부근 속옷가게를 찾아갔던 잊지못할 실수가 기억이 되어 되살아났다.

 

오늘 같은 비상 사태를 대비해서 앞으로 집에서도 속옷을 입고 있는 습관을 들어야 할지,

아니면 그때는 그때고 지금 이 순간의 편안함을 위해 노 브라를 고수해야할지 그녀는 고민 아닌 고민에 빠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