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길게 잡고 싶지 않다.
그 때가서 일이 어떻게 풀릴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렇다.
올 여름 수련회가 절반의 성공을 이루었으니 다 마친거나 마찬가지고
앞으로 딱 네번의 여름만 더 이 곳에서 보내고 싶다.
막내가 올 해 복학을 했고 내년 내 후년 3,4학년을 마치면 되니 두번이고
그 뒤로 두해 정도만 더 일하다가 그만 두고 싶다.
올 해로 주방장 생활 21년째.
기저귀를 차고 왔던 막내가 군 복무도 마쳤고 복학을 했으니
참 많은 시간들을 이곳에서 보냈다.
시골이지만 아이들이 학교의 대표들을 맡으며 나름 즐거운 학교생활을 했다.
남편도 늦깍이 대학공부를 마쳤고
작으나마 우리가 살 집을 장만도 했으니 알뜰히 살았다고 본다.
곁눈질을 하지 않고 비교하는 생활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아이들 공부와 남편건강만을 생각하며 앞만 보고 달린 21년.
그 동안 크고 작은 사고들과 힘겨운 순간들이 있었지만 다 지나간 일이다.
지금 건강하게 이 자리에 있고 또 앞으로도 남은 시간 동안 그리 할 것이다.
꽤 부리는 성격이 못되니 몸은 고단했지만 칭찬과 격려도 많이 받았다.
철이 바뀔 때 마다 잊지 않고 작은 선물을 챙겨 주시던 고마운 분들도 많았다.
익숙해 지지 않는 아픈 이별도 자주 있었다.
딸처럼 며느리처럼 사랑해 주셨던 할머니들....
가끔은 할머니들이 좋아하시던 음식을 하면서 함께 지냈던 세월이 그립기도 하다.
너르디 너른 마당에 전국에서 얻어 모은 야생화로 꽃밭을 만들면서 행복했고
휴가비로 만든 능소화터널이 어우러지는 것을 보면서 참 잘했구나 싶다.
직장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 사는 집이라 생각하고 그 세월 동안 꽃을 참 많이도 심었다.
지금은 막연하게 5년 후 쯤 그만둬야지..하지만
막상 그만두고 이삿짐을 사야 된다면 무척 서운 할 것 같다.
근속의 특별한 선물로 지금 사는 사택도 우리 마음에 들게 짓게 해 줬다.
일을 그만 두고 나갈 때 짊어지고 갈 수는 없지만 있는 동안에는 우리 집이다.
자유롭고 넓고 쾌적하고 편리한 우리집.
아이들 공부하는 동안에는 특별히 욕심부리지 않겠지만
공부를 마치면 욕심부리고 싶은게 있다.
화려한 옷이나 명품백이 아니라 은퇴하고 살 우리집을 꾸밀 욕심이다.
그 동안 아버님이 사시다가 부산으로 이사를 가시고 지금은 세를 줬다.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는 좁지만 우리 부부가 살기에는 넉넉하지는 않지만 크게 부족하지도 않을 것 같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그 때는 아이들이 다 시집 장가를 갈 것 같고
우리 부부가 살 공간을 편리하도록 고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집 주변에 자연석으로 축대도 쌓고 마당에 커다란 연못도 파고 데크도 들어내고...
농사는 자신이 없으니 최소한의 텃밭만 남겨두고 잔디를 심고 디딤석을 깔고 꽃을 심을거다.
20년 동안 모아 둔 항아리들도 제자리에 앉히고.
최대한 손이 덜 가는 수종으로.ㅎㅎㅎ
그러기 위해서 아이들이 공부를 마치고 2년 정도는 더 일해야 할 것 같다.
부모님들을 위해 지은지 20년 정도는 지났으니 창문이나 여러가지 시설이 노후되었다.
깔끔하게 떼어내고 부분적으로 리모델링을 계획 하고 있다.
그 때까지 건강하게 이 일을 잘 마치고 싶다.
떠나는 자리에 아름다운 그리움을 남겨두고 떠나야 한다.
떠나는 그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