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851

미처 몰랐던 엄마의 속마음


BY 매실 2014-04-22

멀리 이민 가서 사는 큰딸네가 어떻게 사는지 보고싶어서

그렇게 오랫동안 벼르고 벼르다가

드디어 십여년 만에 처음으로 아버지는 다니러 온 외손자를 따라 먼 길을 나서셨다.

 

두 분 다 연세도 있고 엄마는 건강도 여의치 않아 비행기는 커녕 차도 오래 못 타는데

열 몇 시간씩 어떻게 비행기를 타느냐고 도저히 못 간다하니,

여태까지 같이 고생하며 살았는데 의리가 있지 내 어찌 혼자 좋은 구경을 하겠느냐며

극구 마다하셨던 아버지도 이제 이 번 기회마저 놓치면 영원히 못 떠나실 걸 예감하셨는지

갑자기 마음이 변하신 것이다.

 

그 속마음을 헤아려보니 왠지 좀 짠하다.

좀 더 젊을 때 이런 기회가 왔으면 좋으련만...

 

아버지야 워낙 정정하셔서 매일 걷기에,수영에 서너시간씩 운동을 하시니까 큰 염려는 없는데

워낙 까다로운 성격이라 모시고 가는 조카가 고생스러울까봐 걱정이 되었으나

별탈없이 잘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우리 아버지의 꼬장꼬장한 성격에 자존심이 허락질 않았을텐데

손자의 설득끝에 윌체어를 빌려썼다고 했다.

 

외국에서는 건강한 노인도 오랜 비행엔 윌체어를 빌려쓰는 일이 일반적이다,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어디가 아파야만 타는 게 아니다.

설득하는데도 한참 걸렸다고 했다.

 

암튼 그렇게 떠나시는 아버지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운전대를 잡은 작은 사위에게 "사골을 사러가자"고 하시더란다.

"네?갑자기 사골은 왜요?"

의아해서 묻는 사위에게 엄마의 설명인즉슨,

 

그동안 사골국이 그렇게 먹고싶었는데 아버지가 워낙 고깃국을 싫어하시고

그 끓이는 냄새조차 싫어하셔서 집에서 끓일 엄두를 못 내셨다고,

이제 아버지가 안 계신 동안 그걸 손수 끓여 잡숫고 싶다고.

 

그 소릴 여동생을 통해 전해듣는데 놀랍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다.

울엄마가 이날 이때껏 살면서 당신이 뭘 잡숫고 싶다고 표현한 적도 없고

당신 자신을 위해서 뭔가를 하는 걸 한번도 못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골국이 그렇게 드시고 싶었나?

아버지 보내자마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당장 사러갈 정도로?

 

그랬다면 진작에 자식들한테 끓여다 달라고 하든가, 외식을 시켜달라고 하든가

하다못해 마트에서 요샌 데우기만하면 먹을 수 있는 포장제품도 잘 나오던데.

진작 말을 하지...

 

엄만 원래 고기를 안 좋아하는 편이다.

잔치집 뷔페에 가도 맨 나물과 김치,흰쌀밥만 수북히 갖다 드셔서

우리가, 고기도 가끔 드셔야 기운이 나지, 왜 풀만 드시느냐고 늘 핀잔을 주곤 했는데...

 

우리가 내려가면 평소에 안드시고 아껴서 언젯적에 넣어뒀는지 모를

냉동실의 탱탱 언 고깃덩어리부터 꺼내 녹이는 게 일이었다.

 

나도 고기보다는 나물,된장찌개 그런 걸 더 좋아해서 오랜만에 엄마의 손맛을 느끼고 싶은데

우린 맘만 먹으면 조금씩 얼마든지 사다 먹을 수 있는 고기반찬을 해주는 게 싫었었다.

이런건 엄마나 기운나게 놔뒀다 드시라고, 우린 날마나 먹는다고 해도 안 믿는 눈치였다.

 

애들 키우느라고 여기 저기 돈 쓰려면 뭔 고기를 날마다 먹겠느냔다.

요즘 세월이, 당신이 어렵게 산 세월과 같은 줄 안다.

요즘이야 아무리 빠듯한 살림을 산다해도 쌀도 부족해서 배 곯던 그 시절과 같은가?

 

"엄마, 그거 드시고 싶으면 진작 말하지이~"

 

"너도 어여 먹으러 와아~"

 

"아효..내가 세상에서 젤 싫어하는 게 백숙하고 고깃국이야 엄마"

 

"그래? 그래두 놀러와~"

 

"아니 내가 아버지 계셔서 놀러를 못 갔나? 남의 아버진가? 아버지 없다고 놀러오라게?

엄마, 아버지 안 계신 동안 무서워서 어떡해?"

 

"무섭긴 뭐가 무서워? 버럭버럭 화내는 사람 없어서 아주 좋아"


"잔소리 하고싶어서 심심해서 어떡해? 이제 아버지 오실 때까지 그동안 하고싶었던 거

실컷 하셔. 엄만 이제부터 이십일간 자유부인이네?"

 

"자유부인? 일이 지천인데 뭔 자유부인?"

 

에혀...또 일타령이다.

그렇게 이젠 그만 하시라고 말려도 비닐하우스까지 농사를 또 엄청 벌여놓으셨으니

일에서 헤어나오질 못하는 거다.

이웃에 젊은이들이 하나도 없다보니 팔순이 넘은 연세에 이웃집 품앗이까지 해야한단다.

그러고는 아파서 밤새 앓고. 아효.

 

저렇게 평생 일만 하다 돌아가시려나보다.

 

다음엔 엄마가 좋아하는 물렁한 감만 사갈 게 아니라

사골국을 가끔 끓여서 가져가야할까보다.

 

여동생은 엄마가 진작에 이렇다 저렇다 표현을 하지 않고 성격이 왜 저런지 모르겠다고 짜증을 낸다.

아니 그 세대가 다 그렇지, 그저 남편, 자식들만 생각하지 당신 몸부터 챙기는 노인이 몇이나 될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