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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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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모임


BY 그대향기 2014-04-20

 

 

어제오늘 얼마나 동동거렸으면 다리가 후덜덜거린다.

아버님 돌아가시고 49제 때 우리는 행사가 있어 참석하지 못했다.

대전 현충원에서 참석가능한 가족들만 모여 아버님께 예를 갖추고 돌아오셨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후인 어제 어머님 이하 시댁식구 거의 대부분이 다 우리집으로 모였다.

아주버님과 시누이 두 부부와 아이들까지 열일곱 식구가 모이기는 장례 후 처음이다.

절 때도 항상 누가 먼저 가거나 후에 오는 바람에 만나자 곧  헤어지기가 다반사였다.

아버님 초상 때 이러면 안된다고 온 가족이 제대로 한번 모여 보자고 이야기가 오갔었다.

다들 직장 생활의 형편이 다르고 아이들 학교문제 학원문제로 시간맞추기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웠던 건 사실이다.

 

이번에 과감하게 우리가 총대를 매기로 했다.

집도 너른 편이고  직업이 주방장인 내가 몸봉사를 좀 하자며 남편하고 뜻을 맞추었다.

막상 모이자는 날짜가 다가오니 걱정이 앞섰다.

그 많은 가족들 뭘 대접할까?

애어른들이 다 좋아하는 음식은 뭘까?

오래 고민하지 않고 낙찰을 본게 야외에서  고기를 굽자는 것.

텃밭이나 산에서 자란 두릅과 채소들로 먹거리를 준비했다.

김치냉장고에 고이고이 넣어 둔 묵은지도 꺼내고

작년에 담아서 잘 보관해 둔 두릅장아찌며 민들레김치까지 정성만으로 상을 차렸다.

 

고기는 본인이 배가 불러서 더는 못 먹겠다 할 정도로 넉넉하게 준비했다.

처음으로 다 모인 가족들인데(아참 큰 형님하고 둘째형님이 빠졌다)

아쉽지 않게 좀 무리가 가더라도 남편은   풍족하게 대접하고 싶어했다.

방을 닦고 침구들을 다시 세탁하고 배겟닢은 새걸로 갈았다.

작은 저수지가 내려다 보이는 우리들의 오두막에서 조촐한 잔치가 벌어졌다.

식당에 앉아서 먹는 고기맛보다 산바람에 꽃내음까지 덤으로 있어서 그런지

고기맛도 더 좋다고들 하면서 폭풍흡입들을 하셨다.

준비한 사람이 신바람이 날 정도로 접시는 비워지고 또 비워졌다.

설거지는 착한 두 시누이들이 말끔하게 해 치웠다.

 

별볓이 쏟아져 들어오는 산골 오두막에서 좁은 잠을 주무셨지만

나무향이 은은한 방에서 푹..잘 주무셨다니 이 또한 행복하다.

경비일체를 우리가 혼자 감당하기는 버겁지 않느냐며 시누이네가 전화를 했었다.

남편은 이번만큼은 혼자 감당하겠노라고..

그 동안 이런 가족모임이 그리웠던 작은 시누이네는 고맙다는 인사를 몇번이나 했다.

경비부담도 안 준다하지 음식제공도 안 받겠다 하니 미안스럽다며

대왕문어 한마리를 삶아서 왔다.

얼마나 큰지 정말 대단한 녀석이었다.

삶은 주둥이가 어른 주먹만 했다.

도대체  살아서 바다에 있을 때는 얼마나 컸다는건지.....

열명이 넘는 가족들이 두끼나 썰어 먹고도 서너다리가 남았다.

오늘 할머니들 썰어드리니 반갑고 맛있게 드셨다.

 

오늘 아침식사까지 해 드리고 부곡호텔의 목욕티켓까지 끊어드리니

어머님이 퍽 좋아하셨다.

\"너그 아부지도 이 자리에 있었더라면 참 좋아하셨을낀데...\"

그 말씀이 가슴을 후벼팠다.

아버님 살아 생전에 진작 모였어야 했는데.

이제라도 가족들이 일년에 두번씩,어머님 생신 때와 휴가철에

회비를 모아서 전국이 모자라면 해외까지라도 진출하자며  한바탕 기분좋게 웃었다.

아무것도 찬조 받지 않는다 했지만 휴지며 금일봉까지 놓고 가셨다.

그 맛을 못 잊겠다며 두릅장아찌며 묵은지는 조금씩 담아가셨다.

팍팍한 도시에서만 살던 시누이네 두 가정은 제대로 된 힐링을 하고 간다며 고마워했다.

살다가 힘든 시간이 오면 언제든지 와서 쉬고 가라며 아쉬운 이별을 했다.

마당에 피어나는 크고 작은 봄꽃들만큼이나 고운 추억 하나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