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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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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와 화해.


BY lala47 2014-04-12

사월은 꽃의 축제다.

봄을 만끽 하면서 이사준비에 마음이 분주함은 어쩔 수가 없다.

사월에 스물두명이 계약을 한다니까 이십사번인 내 차례도 코 앞이다.

이사를 하면 사고 싶은 물건들이 있다.

가스렌지도 바꾸고 싶고 책장도 졸망졸망한 것들은 다 버리고 큰놈으로 하나 세우고 싶다.

그리고 TV... 십오년쯤 썼더니 화면이 가끔 돌아가신다.

수명이 다 된 모양이다.

TV대여도 있다던데...

 

목요일엔 어김없이 당산동에 출근을 한다.

현관비밀번호 누르는 소리에 사촌동생이 현관으로 달려와 환히 웃으며 나를 맞는다.

“언니가 온 이후로 엄마가 명랑해지시고 나를 귀찮게 안하셔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

사촌동생이 나를 반기는 이유다.

“김치를 참 맛있게 담그시네요.”

이서방은 내 김치가 입에 맞는 모양이다.

빵에 버터와 잼을 발라서 이서방이 내게 내민다.

“맛있어요. 한쪽 잡숴보세요.”

빵을 한쪽 받아 먹었다.

“향이 아주 좋은 와인 가져온 것 있는데 한잔 어때요?”

“술 끊었어요.”

“한모금도?”

“그럼 한모금만 주세요.”

와인도 반잔 받아 마셨다.

 

“언니! 파랑 양념 다 씻어놨어. 오늘은 파김치 좀 담궈줘. 나도 좀 배우고 싶은데 말로라도 가르쳐 줘. 이서방이 지난번 양배추 김치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

마누라가 이렇게 음식솜씨가 좋은데 왜 남편이 바람을 피운거냐고 이서방이 묻더라구.“

“그러게...음식만 맛있었던 모양이지. 다른 것도 맛있어야 하는데 말이야.”

내 말에 사촌동생이 까르르 웃는다.

 

부부가 출근을 한 후에 고모는 씽크대 아래로 의자를 놓고 붙어 앉으신다.

“나 너 하는거 구경할래.”

“그러세요. 잔소리만 안하면 환영이지요.”

“빨리 끝내고 화투 치자.”

“기다리세요.”

“알았어.”

‘우리 짜장면 사먹으러 나갈까?“

”불고기 양념했어요“.

”그래. 다음 주엔 유산슬이랑 짜장면 사먹으러 나가자.“

“그래요.”

“얘! 난 심서방이 너무 불쌍해. 정말 올데 갈데 없어진다면 네가 받아주면 안되겠니?”

“글쎄요.”

“생각 좀 해봐. 애들 아버진데 불쌍하게 만들진 말아야지.”

“생각해보지요.”

“네가 딱 잘라 안된다고 안하니까 다행이다. 너 착한거야.”

속으로 웃었다.

 

여러 말을 하고 싶지 않아서 그리 대답했거늘 고모는 날더러 착하다고 하신다.

애들 아버진데 라는 말이 가시처럼 목에 걸렸다.

신부님 강론이 생각 난다.

육십만 마르크를 빚진 사람의 빚을 임금님이 탕감을 해주셨단다.

큰 빚을 탕감 받은 이 사람은 돌아와 자기에게 이백마르크를 빚진 사람에게 빚을 갚으라고

닦달을 하다가 그 사람을 감옥에 보냈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들은 임금님이 그 사람의 빚을 탕감해준 것을 취소하고 감옥에 보냈단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나는 너의 큰 죄를 사하여 주었거늘 너는 왜 네게 잘 못한 사람의 작은 죄를 용서하지 못하느냐.

강론을 듣고 많은 생각을 했다.

세상에는 용서하지 못할 죄는 없는 것이다.

단지 오만만 있을 뿐이다.

용서와 화해가 같은 것은 아니니까 용서에 인색하지 않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