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꽃샘추위가 시작이라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봄은 분명히 문턱을 넘어섰다.
삼월이 시작되면서 자원봉사센타에 발대식이 있었고 교육이 있었다.
겨울 동안에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이 다가와 악수를 청하고 인사를 한다.
보고 싶었어요. 하며 끌어안는 사람도 있었다.
이제 어느 곳에 가든지 누구를 만나도 어색하지 않고 익숙해져가고 있는 자신을 보며
혼자 웃는다.
이렇게 사는거로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나이 탓인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고맙다.
LH공사에 찾아가보았다.
이십사번이면 언제 입주인가요?
대답은 알지만 또 물어본다.
십삼번까지 입주를 했다는 정보를 알았다.
오길 잘했다.
동행한 할머니랑 아파트까지 함께 가보았다.
물향기 수목원을 지나서 이십분쯤 걸어 올라가니 금암마을 7단지가 나온다.
공기가 신선했고 산책 코스가 좋았다.
할머니의 수다는 끊이질 않는다.
그러셨어요? 그랬군요.
나는 맞장구를 쳐준다.
열두 살에 전쟁을 겪었다니 나보다 여덟 살이 많은게다.
할머니는 별거중인 아들을 데리고 임대아파트에 이사 가야 한다는 사정도 이야기 한다.
이런 이야기 아무에게도 안했어요.
그렇군요.
사람들은 그런다.
이런 이야기 아무에게도 안했어요.. 라고..
그날부터 였다.
집에 돌아와 이사 준비를 시작했다.
추억 때문에 버리지 못했던 옷들을 과감하게 버리고 다시 읽지 않을 책들을 버리고
다시 신을 일이 없는 신발을 버리고 구입했을 당시의 기억 때문에 끌어안고 있던 그릇을
버렸다.
며칠 동안 버리는 일에 몰두하다 보니 장롱이 훌빈해 졌고 신발장과 책장이 여유로와졌다.
버리면 되는 것을 왜 그동안 끌어안고 갔을꼬.
사람도 마찬가지다.
끌어안고 삼십 구년을 지내온 일은 아직도 한심한 기억으로 남는다.
친구들은 그런다.
너 혹시 그 사람을 다시 받아들인다면 동창회 명단에서 네 이름 삭제될줄 알아.
너 혹시 재결합을 계획한다면 우리 모두 너랑 절교할거야.
너 혹시 쓸데없는 오지랖을 펼치는 건 아니겠지?
너 혹시 지난날 의 불행을 까먹은 건 아니겠지?
문자가 온다.
너 임대아파트 당첨 되었다면서? 정말 축하해. 정말 잘 됐다.
또 문자가 온다.
당첨 되었다는 소식 들었어. 네가 착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이젠 다 잘 될 거야.
축하한다. 축하해.
함께 기뻐해주고 함께 염려해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살 맛 난다.
지나간 일을 돌아보지말고 지금 주어지는 모든 것에 감사하며 이 봄을 행복하게
맞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