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쯤 전 일이다.
\"엄니! 윤지가 자꾸 할머니한테 가고 싶다고 해요. 우리 당산동에 가도 되나요?\"
반가운 마음에 고모한테 허락을 받을 순서를 깜빡한채 오케이답을 했다,.
전화를 끊고서야 고모한테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이 오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는데요.\"
고모의 안색이 좋질 않았다.
\"이렇게 갑자기? 왜 나한테 비밀이었지?\"
\"지금 전화가 와서요.\"
\"오라고 했다니 할수 없지.\"
며늘아이와 아이들이 왔다.
아줌마에게 밥을 조금 더 하라고 해서 저녁밥은 준비가 되어 있었고 굴비를 구워서 저녁을 먹였다.
고모는 감시자처럼 며늘아이 앞 자리에서 꼼짝도 않으신다.
\"아이가 보통이 아니겠어. 강한 성격인게야.\"
윤하를 바라보며 마땅치않으신듯 말씀하신다.
엄숙한 분위기에 주눅이 든 윤지는 한구석에 앉아 그림만 그리고 멋모르는 윤하는 내 방으로 들어가 침대위에서
구르기를 한다.
눈치빠른 며늘아이는 할머니랑 더 있겠다는 아이들을 달래서 데리고 갔다.
주차장에서 윤지는 나와 헤어지기가 싫어서 자꾸 함께 가자고 졸라댔다.
고모는 기분을 상하셨는지 일찍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닫으셨다.
살얼음을 딛는 기분이었다.
문제는 다음 날에 벌어졌다.
변호사 사무실에 전화를 해서 약속을 잡으라시는 말씀에 그리 했다.
\"너 왜 이렇게 서두르니? 내가 지금 전화하라는 말은 아니었잖아. 더 할말이 있었는데 네 맘대로구나.\"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제도 나는 기분이 무척 나빴어. 내 집에 사람이 오는걸 왜 내가 몰라야하냐구. 여기가 분명히 내 집인데.
넌 참 예의가 없어. 배려도 없고. 내 입장은 전혀 생각지 않았잖아.
우리집에 처음 오는 네 며늘아이를 내가 그렇게 소홀히 대접하도록 하다니 내 실추된 명예를
네가 어떻게 회복시킬거냔 말이야. 내가 잠이 안오더라.
우리집에 방문하려면 하루나 이틀전에 미리 예약을 해야지 그렇게 갑자기 쳐들어오면 내가 준비를 할 시간이 없잖아.
제대로 된 식사를 대접했어야지. 그건 네가 나를 위해서 배려했어야 할 부분이라구.\"
너무나 화를 내시는 바람에 나는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마지막 말씀이 나를 자극했다.
\"너희 엄마가 생각 나더라. 너를 이렇게 가르친건가 의심이 가더라.\"
시누이 올캐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매사에 엄마를 들고 나오면 나는 화가 난다.
\"제가 미처 생각을 못했네요.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서 자리를 물러나왔다.
사촌동생과의 약속만 아니면 그날 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엄마가 쉬운 분은 아닌거 언니도 알지?\"
그 말의 의미를 알것 같았다.
그 일이 있은 며칠 후에 고모의 사돈이 갑자기 찾아왔다.
아파트 근처에서 전화를 하고 바로 들어오는 사돈을 맞기위해서 고모는 나와 아줌마를 닥달했다.
냉장고에 있는 자료를 동원해서 아줌마와 저녁상을 준비해 냈다.
\"갑자기 와서 죄송해요.\"
\"사람 집에 사람이 오는데 언제면 어떤가요. 와주셔서 고맙지요.\"
사돈은 사위의 누나다.
며칠후엔 그 누나의 딸이 갑자기 찾아오기도 했다.
예외없는 법칙은 없는가보다.
미리 예약을 해야하는건 우리측 사람들인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의가 없고 배려가 없다는 말이 두고 두고 가슴에 남았다.
이왕 예의와 배려가 없는 바에야 내가 편한대로 윤지가 나를 원하는 날짜에
아이들 집에 가서 이박 삼일을 하고 오기도 했다.
이왕 예의가 없는데 할말은 하기로 한다.
\"고모. 나랑 산보 가셔서 자꾸 무거운것 사서 내게 들라고 하시면 힘들어요. 제가 몸살이 난것도
고모가 무거운 과일을 들고 가게해서인것 모르시겠어요? 얼마나 힘든지 인대가 늘어나는것 같았어요.
앞으로도 그런 식이면 전 산보 안나가요,\"
\"알았다. 조심할게. 네가 힘들었구나. 난 몰랐지.\"
\"배려가 없으시네.\"
\"내가 잊어버리면 또 알려줘.\"
\"그리고 제가 과일을 많이 먹는 편이니까 제 과일은 제 돈으로 사먹을게요. 눈치가 보여서 과일도
못먹겠어요.\"
\"알았다. 그렇게 해라.\"
이제 이십삼일 남았다.
하루 하루 달력을 보면서 춥지만 편안한 내 집을 그리워한다.
\"고모! 제가 산 귤인데 한턱 쏠까요? 하나 드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