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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의 통곡


BY 그대향기 2014-01-14

 

 

미운 정도 정이라고 했다지?

아버님 정정하실 때 어머님을 참 많이도 힘들게 하셨는데

지금 아버님은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로만 겨우 연명하신다.

갑자기 그리 되신게 아니라 오래 전 부터

당뇨와 혈압으로 지병이 있으시던 차에

며칠전  의식을 잃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셨다.

 

두 눈을 꽉 감고 입은 헤~벌어진 모습으로

뇌파만 정지된다면 딱 시체 같으셨다.

오늘일까 내일일까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정작 중환자실에서 아무런 의식없이 누워계시니

올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자식들은 정리가 되는 기분이었다.

수술이나 기타 물리적인 치료는 하지 않기로 했다.

산소호흡기와 간단한 통증치료만 하기로 했다.

 

이미 신체의 여러 부분에서 괴사는 오기 시작하셨고

장기의 여러 곳에서도 정상하고는 점점 멀어지고 계셨다.

수술을 하신다고 해도 회복될 가망성도 희박했고

투병생활이 더 힘들 것 같기에 아버님 스스로 의식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기로 했다.

아주버님이나 남편이 간단하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기에

다른 자식들과도 충분한 의논을 하고 결정했다. 

친정엄마도 의식을 잃고 쓰러지셨을 때 응급실에서 엄마의 자식들 5남매들도 그리했다. 

 

그런데 어머님은 아버님이 정정 하실 때 자주 다투셨고

까탈스러우셨던 아버님 때문에 여간 힘든 시집을 사신 것도 아닌데

\"나는 너거 아버지 없이는 못 산다 우짜꼬~

 너거 아버지 안 깨나실랑갑다~~

 나는 나는 외롭고 무서버서 우찌 살라꼬~~엉엉엉....\"

꺼이꺼이 목 놓아 자꾸만 우신다.

 

휴대전화 밖으로 어머님의 눈물이 철철 흘러 넘칠 것만 같다.

너무 우시느라 숨도 제대로 못 쉬어져서 헉헉대시는 거친 숨소리도 뜨겁게 느껴질 판이다.

전에 가깝게 사실 때 두 분이서 다투시고는 우리집으로 피신 오셔서

기분 푸시라고 받아 드린 막걸리 한잔에 취하셔서 두서없이 쏟아 놓곤 하셨다.

너거 아버지 같은 사람 없다며 지긋지긋하다고 하시더니

그런 아버님이 가시려 하는데 너거 아버지 불쌍해서 어쩌냐고~

너거 아버지 없이는 나는 못산다고 우신다.

 

어머님은 아이를 낳지 못해서 첫번째 결혼은 실패하셨다.

줄줄이 어린 6남매를 둔 젊은 홀아비였던 아버님을 중매로 만나 재혼하셨다.

맞선 자리에 단추 떨어진 잠바를 걸친 아버님이 그리 안타까우시더라며 재혼을 결심하셨다고 했다.

내가 저 단추를 달아주며 배 안 아프고 낳은 6남매를 키우며 살겠다고 한 어머님의 재혼은

어린 6남매들의 날마다 전쟁 아닌 전쟁에다가  식성이 까다롭던 아버님의 식사시중은

새벽 잠과 밤 잠까지도 앗아갔다.

 

세탁기가 없던 40여 년 전 그 시절에 산더미처럼 쏟아져 나오던 개구쟁이들의 빨래며

자그마한 공장을 하셨던 아버님의 하루 세끼 밥 배달은 시간 싸움이셨다고 들었다.

점심시간에 조금만 늦어도 불호령이 떨어졌고

국이 식던지 반찬이 시원찮은 날에는 영락없이 삐지시곤 하셨다.

부랴부랴 다시 자갈치시장으로 아버님이 좋아하시는 횟거리를 사러 가셨던 어머님이셨다.

어린 6남매 밥하고 빨래하는 것만도 하루 종일 일인데 아버님 시중까지 오죽하셨으랴.

 

비행기를 타고 서울 부산을 오가며 미니스커트에 선그라스가 어울렸던 어머님

가난한 홀아비 그것도 혹이 여섯이나 딸린 아버님을 만나

온갖 허드렛일을 다 하시면서 살아 온 어머님의 40년은 고난의 연속이었는데도

이제 아버님이 가시는 길에는 그것도 그리우신지 자꾸만 우신다.

이유를 몰랐던 아버님의 짜증과

본인의 기분에만 열중하셨던 아버님의 육두문자까지도 그립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우신다.

\"너거 아버지 안 깨나면 나는 우찌 살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