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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476

고모와.


BY lala47 2013-11-12

초겨울 추위가 제법 찬바람을 안고 찾아왔다.

월화수는 오산에 목금토일은 당산동에...

무척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

고모는 눈이 좀 어두우실뿐 잘 잡수시고 잘 주무신다.

처음에는 내 시간이 전혀 없이 종일 고모와 마주 앉아 있는것이 힘이 들었는데

이제 내 시간이라는것을 포기 하고 나니 그 또한 견딜만하다.

삼개월인데 뭐..그렇게 마음을 접었다.

 

고모의 유학시절에 주교님을 위해서 김수환 추기경님과 고추장 담그던 일을 엊그제 일처럼

이야기 하신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그 당시엔 초보 신부였지..찹쌀가루 사가지고 오라고 심부름 시켰더니

어찌나 투덜대시던지..나랑 동갑이어서 친구처럼 지냈지.\"

 

 고모의 시아버님이 김구선생과 일본형사를 죽이고 중국으로 도망 간 이야기도

실감나게 들려주신다.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리던 당시에 우리나라가 얼마나 난장판이었는지 넌 모를거다.

서로 죽이고 죽고 난리도 아니었어.\"

\"김구선생과 이승만은 사상이 달랐어. 김구선생은 압록강의 무한한 자원을 남쪽으로 끌어들여서

전기를 만들자고 우겼지만 이승만은 달랐어. 그땐 이북이 이남보다 더 부자였거든.\"

 

그러다가 이야기는 고종황제 돌아가셨을때 꼬마였던 고모의 어린시절로 돌아간다.

\"할머니가 매일 소복하고 대궐앞에 가서 곡을 하실때 나를 데리고 가셨지.

읍하라고 하시지만 나는 고개를 쳐들고 었었단다.\"

 

구십삼세의 고모는 과거에는 강하고 현재에는 약하시다.

지난 이야기를 하실때엔 엊그제 일처럼 선명하게 기억을 하시지만 돈 계산을 못하신다.

\"얘. 내가 생활비를 다 써서 지금 너 줄돈을 꺼내 쓰고 있어. 네 돈은 내가 따로 봉투에 넣어두었었거든.\"

\"나중에 채워놓으세요. 까먹지 말고.\"

\"알았어.\"

고모의 장롱속에 숨겨놓은 현금을 이쪽 저쪽에서 찾는 눈치지만 모르는체 했다.

주말에 온 손녀한테 돈을 더 찾아다달라고 조르다가 거절당한다.

\"할머니 벌써 그러면 안되요. 십오일까지 참아요.\"

손녀는 완강하다.

 

\"너 봤지? 내 돈을 찾아달래는데도 안된다잖아. 내가 비밀번호를 잊어버려서 부탁한건데 말이야.\"
웃지 않을수 없었다.

\"난 옷이 한벌밖에 없어. 이것말고는 입을게 없단다.\"

그럴리가..

장롱속을 보자고 할수도 없고 딱하게 되었다.

중국 사람인 파출부 아줌마도 고모의 비위를 잘 맞춘다.

오만원짜리와 만원짜리를 제대로 구분해서 파출부아줌마에게 주시는것이 가끔 신기하다.

 

\"네가 담근 깍두기랑 나박김치가 정말 맛잇어.  나중에 아이들 오면 그때도 담그어줄래?\"
\"그러지요.\"
\"아이들이 와도 가끔 와서 담그어주면 안될까?\"
\"그러지요.\"

\"잔심부름은 파출부아줌마가 해줄거야.\"
\"알았어요.\"

\"너 김치장사할래? 사업계획은 내가 세워볼게. 우리집 부엌과 아줌마는 내가 제공할게.\"

\"그러세요.\"

 

\"십일월이 너무 길어. 네가 오산에 안가도 되는 십이월이 얼른 왔으면 좋겠어. 네가 없는 월요일 화요일이

너무 지루해.\"
또 웃었다. 어린애처럼 응석을 부리는것처럼 보였다.

\"우리 수산시장가서 홍합 좀 사먹으면 안될까.\"
\"배탈나려구.\"

 

당산동에 온지도 한달이 다 되어간다.

기도를 열심히 하시다가 점쟁이 이야기를 하시는 고모와의 생활이 이제 익숙해지고 있다.

한가지 분명한것은 늙을수록 돈이 있어야 한다는 진실이다.

돈 많은 노인의 응석은 귀여울수 있지만 가난한 노인의 응석은 부담스러울것이다.

부담스러운 노인이 되지 않기위해서 무엇을 해야할지 난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