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아름다운 아파트 정원을 고모와 산책을 한다.
힘이 드신 고모는 자주 벤취에 앉으시기때문에 산책하는 시간보다는 벤취에서의 수다를 더 즐기시는것 같다.
신선한 바람을 맞으며 매일 듣는 지난 이야기들을 나는 여전히 웃으면서 듣는다.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것도 행복한 일일테니까.
말이 고프셨던게다.
나이가 들수록 과거에 집착하게 됨은 어쩔수 없는 일일게다.
미래는 없고 과거만 있는것이니까.
오십년전에 있었던 일도 한순간에 지나간것처럼 기억되기도 한다.
고모와 지내면서 깨닫는것은 나는 지난 일을 지우기에 급급했다는 사실이다.
지워야만 하는 일들만 있었던것은 아닌데 말이다.
화해는 하지 않아도 용서는 하라는 신부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화해와 용서가 같은것이 아닌가보다.
나이가 들어가니 단순해진다.
내게서 등돌린 사람은 잊으면 되는것이고 주제넘은 동정심은 가지지 않으면 되는것이고
공감대가 같지 않은 사람과는 대화를 하지 않으면 되는것이다.
묻지도 않는 말에 지나친 정직함..그 또한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속을 보여주어도 되는 상대와 그렇지 않은 상대를 구별할수 있는 능력도 나이에 얹혀진
보너스 같은것이다.
그러니 나이가 고맙다.
만 육십오세가 넘어 지하철을 공짜로 타고 적지않은 혜택을 본다.
처음엔 어색하더니 이젠 제법 익숙해졌다.
언젠가부터 내 마음에 그리움이라는것이 지워진것에 나도 놀란다.
보고싶은 사람이 없다는것은 삭막한 일이지만 사실인것을 어쩌랴.
마음이 사막처럼 변해버린것이 아닐까.
체념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드디어 해냈다.
난 아무도 보고싶지가 않단 말이다.
십일월이 시작되었다.
초겨울의 시작이다.
왠지 십일월은 초조함과 쓸쓸함을 동반한다.
내게 어울리지 않는 칠십평의 고급 아파트에서 이번 겨울을 보내기 시작하면서 임대아파트 당첨에
목 매고 있는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곧 겨울이다.
마음은 춥지 말아야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