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14세 미만 아동의 SNS 계정 보유 금지 법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548

[섬에서 살아볼까]공기가 참 달다


BY 왕눈이 2013-10-25

왠 10월 태풍이 연이어 올라오는 바람에 거문도 앞바다는 삼일째 주의보가 내려 바닷길이 막혀있다. 

일주일간의 서울 나들이를 마치고 내려오면서도 혹시나 태평양쪽에서 만들어졌다는 태풍이 가까이 올라올까봐

일기예보를 몇 번이나 확인하고서야 길을 나섰었다. 육지에서야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는 길이 막히는 경우가

없지만 섬을 오갈때에는 항상 앞뒤로 며칠 동안 일기가 어떤지 살펴야 한다.

 




 

약간 불안한 풍랑을 살펴 오후배로 들어왔지만 바로 주의보가 내려졌다. 아마도 나와 같은 배로 들어온 관광객들은

지금도 섬 어디에선가 TV를 보거나 술 한잔 하면서 어서 주의보가 해제되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이번 서울 나들이는 지난번 팔꿈치 수술을 하기 위해 입원했던 나들이를 빼고는 섬에 내려와 가장 오랫동안 머물렀던 것같다.

건강검진도 해야했고 반 년 만에 나갔으니 밀린 친구보기도 해야했었다.

첫날은 늦게 도착해서 패스했지만 이튿날부터 여고동창에 초등학교동창에 대학동창까지 약속이 이어졌다.

덕분에 내 간에게는 너무 미안했지만 어찌 차만 홀짝 거리고 헤어진단 말인가.

그래도 아직은 나를 잊지 않고 있어준 친구들 덕에 섬생활도 견딜 수 있는 것같다.

 

보광동에서 낳아서 이태원 언저리에서 자란 나에게 이태원은 그 때나 지금이나 퍽이나 낯설다.

보광동과 이태원의 경계가 정확했던 것 같지는 않았는데 그 시절 우리와는 다른 피부를 지닌 사람들이

껄렁거리며 양색시들과 희희덕거리던 모습은 참으로 무서웠었다.

 

해밀턴호텔쪽에서 보광동으로 내려오는 그 길은 지금 이렇게 부티끄샾들이 이어져있다.

예전에는 그저 구멍가게 몇개와 연탄집 쌀집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말이다.

백인과 흑인으로만 구분되어지던 그 때와는 다르게 완전 다국적 동네가 되어버렸다.

아랍인들도 상당히 많아졌고 아프리카인이나 동남아인들로 북적거리는 다문화거리가 되었으니 예전이나

지금이나 낯설기는 마찬가지인 셈이다.

 

예전에 엄마가 두부나 콩나물을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키면 쪼르르 달려가던 그 가게는 이미 없어지고

친구들과 술래잡기며 고무줄놀이를 하던 이 골목이 이렇게 좁은 곳이었다니..내가 늙기만 한 것이 아니라 넓어졌나?

 

이 곳에서의 3년 반의 섬생활도 여전히 낯선데 가끔의 서울 나들이도 편하지만은 않다.

특히 이번 나들이길에서 크게 느낀 것은 바로 \'공기\'였던 것 같다.

지하철을 타려고 지하로 내려서면 숨이 콱 막히는 것 같고 그전 보다는 덜 하겠지만 도심의 공기도 속이 답답했다.

서울내기인 내가 섬에 내려오기전에는 크게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었는데 섬에 무진장한 공기가 얼마나 단 것이었는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예전부터 몸이 아픈 사람들이 공기좋은 곳을 찾아다녔다는데 공기 좋은 곳으로 치면 지리산이나 태백산 못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 암수술을 했다는 친구에게 얼마든지 쉬러 오라고 말해주었는데 이렇게 뱃길이 자주 끊기는 고립감이 더 무서울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모아놓은 절인 생선들과 말린 미역들을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빈손으로 홀가분하게 내려오나 싶었는데 녀석들이

싸준 선물로 다시 내 손은 무거워졌다. 그래 인생이란 덜어내야만 다시 채워진다는 진리가 다시 확인되는 셈이다.

건강하게 살라고 준 영양제에 예쁜 옷들이며 외국에서 사왔다는 말린 과일과 와인까지.

오히려 나갈 때보다 더 무거워졌다. 물론 녀석들의 마음이 더 값지게 다가왔지만 모든 것이 귀한 섬에서는 다 소중하기만 하다.

 

어디가 내 집인지 어디도 완전히 편하지 못한 현실이지만 이렇게 아직까지도 나를 기억해주고 챙겨주는 친구들이

있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거리가 무슨 대수인가. 마음은 늘 함께인데..하면서 쓸쓸한 섬 안에 갇혀 나는 오늘 위안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