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집에는 조선족 대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한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약 한달 가량을 있을 예정이다.
착실하고 심성이 곱고 아주 부지런하다.
조선족이라 말도 잘 통하고 큰 불편은 없다.
중국어를 기본적으로 잘 하는 그 학생은
주일이면 우리하고 같이 예배도 드린다.
중국에서도 교회를 다녔던 그 학생은
혼자서 성경을 읽을 때는 한자로 된 성경책을 읽는다.
엄마가 몇년 전에 한국으로 먼저 와서 돈을 벌고 계신다고 했다.
일곱살 위인 형과 예순 중순을 넘긴 아버지는 중국에
계시는데 엄마랑 떨어져 산지도 벌써 13년째라고 한다.
고향에서는 돈벌이가 크게 없어서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산다고 했을 때
그만한 자식을 둔 엄마 맘이라 얼마나 힘들까 싶어서
반찬도 더 집어주게 되고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하려고 한다.
며칠 전에는 학생의 엄마가 여름 휴가를 받아 아들을 만나러 왔었다.
금속회사에 다닌다는데 이 여름 강한 볕에 건조된 사람처럼
깡 마른 몸매에 쉰 중반에 접어 든 여자의 얼굴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될 정도로 노안이었다.
나보다 고작 두어살 윈데 바람이 불면 날아갈 듯
굵은 비라도 오면 그 빗줄기가 몽둥이처럼 느껴질 정도로
안스럽고 보호본능이 일어나게 만드는 여인이었다.
내가 원래도 덩치가 있지만 그 엄마 옆에서는 거인나라의 여자였다.
어쩌면 그런 나약한 몸매로 10여년이 넘도록 남의 나라에서
파출부며 공장 일 등을 하며 가족을 떠나 살아갈 수 있었던지....
아홉살 때 부터 엄마없이 살아 온 학생도
아내없이 고향을 지키며 혼자 살아가는 남편분도 다들 대단하다.
몇년에 한번씩만 만나서 안부 전하고는 수만리 먼 이국 땅에서
오로지 고향으로 부쳐지는 꿈덩어리
돈을 악착같이 모아서 부친 결과
고향에 2만평의 땅을 사 놓았다고 했다.
내년에는 영구 귀국을 해서 그 땅에다가 농사를 지으며
온 가족이 모여 살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는데
만지면 부서질 듯 나약해 보이기만 하던 그 엄마가
작은 거인처럼 느껴졌다.
중국이 아무리 땅이 넓다고 해도 그저 줄 사람은 없다.
먹고 살 길이 막막해서 어린 자식과 나이 많은 남편을 떠나
남의 나라에 와서 그 작은 몸을 더 작게 만들며
악착을 부려 사 모은 땅 2만평은
그 엄마의 13년 동안의 농축된 그리움이고
증발해 버린 피눈물인 것이다.
이제 고향에 돌아갈 희망에 부푼 그 엄마가
부디 가족의 품에서 대지의 품 안에서 행복하기를 바란다.
한가지 걱정스러운 것은 우리집에서 두어끼 식사를 같이하면서
시원스럽게 식사를 잘 하지 못해서 물어보니
위장이 많이 나빠져 있다고 해서 걱정이다.
돈이 아까워서 잘 먹질 못해서 그런지
시간에 쫒겨서 끼니 때를 놓쳐서 그런지
고향에 돌아갈 그 엄마가 나머지 시간 동안에라도
건강을 회복해서 돌아갔으면 좋겠다.
2만평이면 엄청나게 넓은 땅인데
결코 만만치 않을 농사일에 지치지나 않으실지 ...
13년만에 이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데
건강하게 그 동안 나누지 못했던 가족간의 사랑을
고향 내 땅, 2만평에서 마음껏 누리시길 바란다.
많이 행복하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가족이란 이렇게 수만리 떨어져 살아도
십수년을 떨어져 살아도 그리움으로 하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