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민동산에 분수가 시원하게 물을 뿜어대고 마침 등나무 그늘아래 긴 의자 두 개가 비어 있었습니다. 우린 분수를 바라보며 각자 따로 앉았지요. 이제 6월 초순인데 긴 바지에 반팔 옷도 너무 더웠습니다. 부채질을 하며 옆의 의자에 모자를 눌러쓰고 그 아래로 양 볼이 훌쭉 들어가 나이 육십이 넘어 보이는 남자에게 말을 붙였습니다. “어디서 오셨어요?” “해남서 왔소.” “부인은 어디 있어요?” “25년 전에 집 나가서 안 들어왔소.” “세상에 그럼 여태까지 혼자 사셨어요?” “예.” “안되었네요. 자녀는 있어요?” “딸 하나 아들하나 있소.” “네~ 애들이 몇 살 때~” “딸이 여섯 살, 아들이 세 살 때 암말도 없이 가부렀소.” “혹시 주정으로 폭력을 썼어요?” “아니라. 나는 술 한 잔도 못허요.” “그러면 다른 여자를 보셨어요?” “나는 지금까지도 다른 여자 근처에도 안가요.” “네~그러면 부인이 바람이 났군요.” “그런 것도 아닌 것 같고 뭔 이유로 나갔는지 아직도 이유를 모르겄소.” “그러면 지금은 생활은 어떻게 하세요?” “딸도 아들도 아직 공부하고 있고 나는 회사 퇴직을 해서 연금으로 먹고 쓰고 하요.” “그래요? 연금이 많이 나와요?” “뭐 할라고 다 물어보요?” “호호호. 아, 분수가 시원~하게 올라가고 내려오고 그러니까 사람의 마음도 시원~하게 털어 놓으면 몇 십 년 묵은 스트레스도 확~ 사라질 것 같아서요.” “그라믄 그짝은 몇 살이요?” “아직 계란 두 판은 안 채웠어요. 아저씨는 나이가 어떻게 되요?” “나는 모자를 쓰먼 오십이고 벗으먼 육십이요.” “우하하하. 한 번 벗어보세요.” “내가 여자들 앞에서는 모자 안 벗은디. 할 수 없소. 자. 3초만 보시오.” “하나. 둘. 셋!” “아이고 아저씨 너무 빠르시네요. 순간 봐도 머리꼭지가 반드르 하시네요.” \"아저씨 우리 사귈래요?\" 우리는 마주보고 어깨를 들썩이며 크게 웃었다. 오랜만이었다. 남편은 환갑을 보내고 더 유머가 무르익고 이제 쉰여섯이 된 나는 어느새 마음은 스물여섯나이로 돌아가 남편에게 장난을 걸었다. 우리 이렇게 재미나게 늙어가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