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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AIR...TV는 사랑을 타고..


BY 비단모래 2013-07-07

내가 작가가 될 운명이었을까?

결혼하고 작가가 되고 나중에 생각해보니 나의 결혼이 성공하기까지 지대한 공로를 끼친건

우리집 흑백 텔레비젼 이었다.

 

21살

27살의 그를 만났다.

 

우연처럼 만난 그

8남매 장남에...여러가지 여건이 어머니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아버지께서는 경제적인거야 젊으니 ..사람 괜찮아서 괜찮다시다고 하셨지만

 청빈한 선비인 남편과 6남매를 건사해야 하는 가장으로

팍팍한 삶을 살아오신 어머니는 어린딸을 8남매 맏며느리로 보낸다는것이 걱정이셨다.

 

불보듯 뻔한 딸의 앞길이었기 때문이다.

앞길에 어떤것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해사하게 웃는 딸을 얼마나 아프게 바라보셨을까?

결혼은 보랏빛 환상이고

매일이 안개꽃다발을 안을 수 있는 기쁨으로만 착각한 스물 한 살

 

 

영 마뜩찮게 생각하고 계신 어머니께 남편을 소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

남편은 어려서부터 노래를 잘했다고 한다

중학교때 선생님들께서 들어오시면 출석을 부르고 이사람의 노래를 들은후 수업을 시작하셨다는..

남편의 무용담을 믿을 수 있는 기회였다.

 

물론 나를 만나면서 불러준 노래들

아..나는 어쩌면 이사람의 노래속에 빠졌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사람의 맑은 눈

옥수수알처럼 나란히 이

웃을 땐 눈이 보이지 않는 함박웃음이

앞길에 대한 불안함을 기억하지 못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냥이었다.

그냥 좋았다.

 

그러나 현실의 어머니는 이것도 저것도 아무것도 맘에 드는것이 없으셨다. 

우리집은 오빠들부터 공부만 하는 집안 ..

그것도 국내우수한 대학을 진학한 오빠 동생들

선비아버지

 

우리집과 영 다른 농촌의 8남매 맏이를 선택하고 헤실헤실 웃는 딸에게

어머니는 늘...

 

엄마...오늘 TV에서 그사람 나온대요..노래자랑인데...주장원을 하고 월장원전이래요

잘 보고...맘에 드나보셔요.

 

다행이 우리어머니는 노래를 좋아하셨다.

어려서부터 우리들에게 노래를 가르쳐주시고 책을 읽어주셨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큰오빠가 방학에 내려오면 우리큰아들 노래해봐..

그러면 큰오빠는 찔레꽃을 멋드러지게 불러드렸다.

큰오빠는 그당시 법대의 가수 ,성악가로 뽑힌다고 했다.

정말 노래를 잘했다.

 

둘째여동생은 가요를 기막하게 잘했다.

일편단심민들레야..개나리처녀를 불러드리면 어머니는 고쟁이에서 지폐를 꺼내 들려주셨다.

어머니의 고단한 삶을 무르게 하던것이 혹시 자식들이 부르던 노래가 아니었을까?

 

그날 흑백TV 앞에 나와 어머니는 나란히 앉았다.

아..오늘 결과가 좋아야 할텐데..나는 마음으로 그것만 응웠했다.

사위가 아무것도 내놓을 것 없다고 하시는 어머니께 노래잘하는 것만으로라도

이사람을 인정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체크무늬 셔츠에 약간 곱슬머리

그리고 쌍거플이 뚜렸한 큰 눈..

내눈에는 최고의 사람으로 보였다.

 

그가 부른 노래는 윤항기의 장밋빛 스카프였다.

 

장미빛 스카프 - 윤항기




내가 왜 이럴까 오지않을 사람을
어디선가 웃으면서 와줄 것만 같은데

차라리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던들
이 고통 이 괴로움 나에겐 없을 걸

장미빛 장미빛 스카프만 보면은
내 눈은 빛나네 걸음이 멈춰지네

허전한 이 마음을 어떻게 달래보나
내게서 떠나버린 장미빛 스카프

장미빛 장미빛 스카프만 보면은
내 눈은 빛나네 걸음이 멈춰지네

허전한 이 마음을 어떻게 달래보나
내게서 떠나버린 장미빛 스카프

장미빛 스카프 장미빛 스카프

 

 


그의 목소리는 낮게 가슴을 파고 들었다

호소력있게 어머니의 눈동자를 흔들고 있었다.

 

차라리 그사람을 만나지 않았던들

이고통 이 괴로움 나에게 없을걸

이대목이 어머니를 흔들었다.

 

어머니의 심장에 오지않을 그녀에 대한 불안감을 노래하고 있었다.

그녀가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노래했다.

 

기생오라비같이 생겨 노래는 잘하네...

 

아 이한마디의 의미는 뭘까?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어느곳하나 흠잡을 수 없는 완벽한 노래라고 하자

어머니는 박수를 치셨다.

그리고 결과 발표..

 

오늘의 월장원..최우수상...

그사람의 이름의 불려졌다.

 

그때 어머니는 손을 탁 치셨다.

될줄 알었어...

흥분한 목소리셨다.

 

꽃다발을 받고 기념품을 받고 소감을 묻자

그녀...

그리고 목이 메였다.

내 눈은 이미 눈물이 가득했고

그는 눈물의 앵콜송을 불렀다.

 

한번 집에 오라고 해라.

 

어머니는 그걸로 그 사람을 받아드리셨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내 팍팍한 8남매 맏며느리의 시간은 끝없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어머니 앞에서는 단한번도 고됨을 말하지 않았다.

누가 시집가라고 밀었니?

그말이 듣기 싫어서였다.

 

어머니는 남편의 노래를 듣기 좋아하셨다.

집에가면 신발도 벗기 전 사위 노래 시..작하면

남편은 번지없는 주막부터 어머니가 좋아하는 노래를 너댓곡 불러드렸다.

 

사위노래를 들으면 삼년묵은 체증이 쑥 내려간다던 어머니..

 

우리들의 이야기는 방송국에서도 회자되어 방송국 42주년 기념일에

우리이야기를 특집으로 꾸며 방송하기도 했다.

연극배우들이 우리대타를 하는데 얼마나 재밌게 꾸몄든지..

 

그렇게 노래를 좋아하는 남편이었지만

직장생활로 자신의 꿈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남편의 정년을 몇년 앞둔 어느날 남편이 어떤 일로 행복하게 남은 생을 살까

생각하다 좋아하던 꿈을 이뤄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꿈을 이뤘다.

30여년 성실하게 직장생활하며 가정을 꾸려온 댓가였다.

 

그러다 30여년의 직장생활을 정년하고 지금 새로운 이름을 달고

가수로 데뷔했다.

 

어머니가 이모습을 보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사위가 가수되는 것을 못보고 돌아가신 어머니

지금 계셨으면 사위 공연장을 열심히 모시고 다니텐데..

 

8남매 맏며느리로 고생한 아내에게 불러주는 노래

부부사랑전도사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오늘도 여보정말미안해 , 고마운당신을 부르는 가수 지중해

 

TV가 맺어준 우리의 인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