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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주년 결혼기념일


BY 그대향기 2013-06-05

 

 

우리가 벌써 이만큼씩이나 오래 살았네~

지나가버린 세월들은 흔적도 없는데 연식만 착실하게 쌓였다.

아니다.

세월의 흔적은 거짓없이 온 몸에 누적되어 있었다.

눈가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없던 주근깨들이 거뭇거뭇 산재했고

머리에는 미용실원장이 볼 때마다 염색하시지요...흰머리가 제법이다.

날보고 할머니~하고 부르는 귀여운 외손녀도 있질 않은가.

 

우스갯소리로 남편이 그랬다.

\"우리 한 사람하고 참 징그럽도록 오래 살았다~\"

그 징그러움이 사랑스럽고 고맙다는 말인 줄은 안다.

한결같이 사랑받는 여자, 아내로 살아가도록 아껴주는 그 마음도 고맙다.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들도 더러 많지만

들추어내기 보다는 덮어주고 알면서도 묵인해 주는 묵은 정이 고맙다.

재력이 많아 손에 물 안 묻히고 사는 깔끔한 여자로 못 살게 하더라도

장날 장마당에 퍼질고 앉아 넋 놓고 작은 꽃 화분에 빠져도 지나쳐 줘서 행복했다.

 

다음 주에 큰 행사가 있어 많이도 바쁜 날이었지만

한번 지나가 버리면 다시는 되돌리지 못할 시간이라며 여행을 가자고 했다.

둘째를 임신하고 약간 우울해 하는 큰딸과 외손녀도 동행하기로 했다.

8월이 출산 예정일인 만삭에 가까운 배사장이라 멀리는 못가고

거제도로 해서 외도로 일정을 잡았다.

가는 도중에 수련언니가 안내해준 호텔에서 숙박을 했다.

성수기 때의 딱 반 가격으로.

그리 큰 호텔은 아니었지만 바다로 창이 난 확 트인 전망이 일품이었다.

 

황토온돌방이라 외손녀랑 자기에 좋았다.

지나가는 통통배 소리도 자장가처럼 들렸다.

끼룩끼룩끼룩~~

갈매기도 우리들의 여행을 축하해 주는 분위기라 착각하며 행복한 하룻밤을 보냈다.

늘 느끼는거지만 여행지에서 좋은 밥상을 기대하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이번에도 호텔 안내에서 일러준 맛집에 갔다가 실망을 하고 돌아왔다.

해물탕이 가격에 비해서 너무 엉망이었다.

싱싱한 해물을, 생물을 기대하고 갔다가 냉동해물탕에 대 실망하고 돌아왔다.

멍게비빔밥도 성게비빔밥도 냄새만 풍기고 살점은 가뭄에 콩나듯....

 

외도에서는 기대했던 것 보다 더 좋은 인상을 받고 돌아왔다.

특히 외도를 가꾸다가 먼저 가신 남편을 향한 아내의 애틋함에 가슴이 뭉클했다.

섬 곳곳에 심겨진 나무나 꽃들이 피어나 형형색색의 아름다움도 좋았지만

바다 중간에 떠 있는 작지도 않은 섬 전체를 그렇게 가꾸리라 마음 먹었던 고인에 대한 존경과

그런 남편과 뜻을 같이 해서 외도를 국가적인 자산으로 만들어 놓은 그 아내가

우리 나라 사람이어서  너무 좋았다.

육로도 아니고 바다를 건너고 모든 자재들을 배에 실어서 가꾸어야 했을 그 수고로움과 고생이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났을 것 같다.

한 사람의 뜻이 그렇게도  큰 아름다움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는게 대단하다.

 

만삭의 큰딸에겐 큰 무리가 가는 일정이었는데도 잘 따라 다녔다.

도중에 산기가 느껴지면 헬기라도 불러주마 약속하고 데려간 여행이었다.

18개월짜리 외손녀도 짧은 다리로 아장아장 잘도 걸어다녔다.

가다가 다리가 아프면 외할아버지 무등도 타고 외할머니 등에 업히기도 하면서

외도 구석구석을 다 돌아 본 이번 여행이 비록 1박 2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앞으로 살아 갈 많은 내일들의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힘든 일도 벅찬 일도 서로 덜어주고 무거운 짐은 대신 져 주면서 살아가다보면

지금보다 더 여러 날을 맘 편히 여행하며 늙어가도 무리가 따르지 않을 날이 오겠지.

성수기때 결혼기념일이 아니라 참 여러가지로 다행이다.

해외여행도 국내여행도 성수기 때는 모든게 비싸고 제대로 된 서비스도 못 받는 것 같다.

여행은 가능하다면 비수기 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