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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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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가는 중


BY 수선화 2013-05-20

친구한테 카툭으로 음성 메시지가 들어왔다.(꼭 비디오테이프 같은 게 떴다.)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이어폰을 끼고 테이프를 꾹 눌러보란다.

엘지 유플러스입니다.” 유플러스 직원인가보다.

뭐라고? 뭐시기 아니여?” 할머니가 전화를 잘못 걸으신 거였다.

엘지 유플러스입니다. 고객님.”

불났다고?”

아니요, 유플러스라고요. 어머니.”

? 목욕탕에 불났다고?”

이런 대화가 몇 분 동안 계속 이어졌다.

실화인지 조작인지 모르겠지만, 몇 번들어보니 실화인 것 같다.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한참 웃다보니 나도 이것처럼 황당하게 말귀를 못 알아듣는 일이 종종 있었다

 

도서관에서 이용자님이 풀을 달라고 했는데, 불이요? 했던 적이 있다.

유플러스를 못 알아듣고 자꾸 불났냐고 물어보신 할머니랑 나랑 너무 비슷하다. ㅎㅎㅎ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면 이주일이 기본인데

이주일 동안 못 보면 일주일 연장이 가능하다.

연장은 전화로 신청을 많이 하는데

이름이 참 많이 헷갈린다.

재와 제, 류와 유, 혜와 해 등등등 참 많다.

특히 세 글자에 받침이 다 있으면 더욱더 헷갈려 여러 번 이름을 묻다보면

전화건 사람은 화가 나고, 전화 받는 사람은 당황하게 된다. 그러면 더 안 들리고.

황종천이란 분이 대출 연장을 원하셨는데, 한중철인지 황종철인지 못 알아들었다.

이럴 땐 한자 한자 물어봐야한다. 특히 연세가 있으신 분한테는 쉽게 풀어 물어봐야한다.

한증막할 때 한인가요? 아니란다.

그럼 노란색할 때 황인가요? 그렇단다.

그럼 가운데 중인가요? 네 중이요 중. 그래서 한중천으로 찾았더니 없다.

다시 물어물어 황종천이란 이름을 찾아 겨우 연장을 시켜드리면서

가운데 중이 종으로 잘못 입력돼 있는 것 같아서

다시 입력해 드리려고 했더니 중이 아니고 종이 맞단다.

근데 아깐 가운데 중이라고 했는데....말이다.

전화하신 분도 나이가 꽤 있으셨고, 암튼 아직도 종이 맞는지 중이 맞는지 모른다.

 

이런 일도 있었다.

서가에서 책 정리를 하고 있는데

사십 초반쯤 된 분이 내게 책에 대해 물어보셨다.

추리물 어디 있나요?”

? 출입문이요?”

“..........”

저 쪽으로 나가시면 출입문이예요,”

아니요, 추리물이요.” 싸늘하게 말씀을 하신다.

! 추리소설이요? 죄송합니다. 이쪽에 있습니다.”

얼마나 얼굴이 화끈한지 나야말로 출입문으로 얼른 나와서 찬물을 한 컵 마셨다.

 

나이가 먹으면 귀도 어두워지고 눈도 어두워지고 다 어두워진다.

이해력도 떨어지고 기억력도 떨어지고 눈치도 떨어진다.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고 서울 시내를 나가보면 얼마나 헷갈리는지...(뒷말은 안 해도 알지요?)

종로 3가와 강남역에서 눈 돌고 머리 돌 뻔했다.

사람도 많고 입구도 많고 비슷한 길이 얼마나 얼기설기 엉켜있는지.

 

목욕탕에 불났냐고 자꾸 물어보시는 할머니나

풀을 달라는데 불이요? 하는 나나. 거기가 거기고, 거시기가 거시기다.

지금도 추리물 책을 찾았는데, 출입문으로 안내해준 나를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얼음 잔뜩 넣은 냉수나 한 컵 마셔야겠다.

 

나는 지금 나이들어 가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