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570

좋은 아빠


BY 새봄 2013-04-21

얼마 전 아들 상록이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보았다.

좋은 아빠가 되는 거요.” 일초도 망설임 없이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 정말? 푸하하하

웃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좋은 아빠가 되는 게 얼마나 힘든 건데요, 한다.

웃는 걸 멈추고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긴 하다.

좋은 아빠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다는 걸

우리 식구는 경험자이기 때문에 알고도 남는다.

 

일본에 있는 딸 청아에게 이 말을 해 줬더니

청아도 나랑 똑같이 수화기를 떨어트릴 정도로 크게 웃었다.

정말? 그럼 난 좋은 고모가 돼야지, 엄만 좋은 할머니가 되면 되겠다. 음하하하하

 

청아는 독신주의자가.

결혼하지 않고 자유롭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하면서 편하게 살고 싶다는데,

상록인 정반대로 좋은 아빠가 되고 싶어 한다.

극과 극인 정신상태지만 둘 다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가고, 그 꿈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상록이가 저번 주에 나라의 부름을 받아 군에 입대를 했다.

입대하는 날 의정부 부대까지 올 거냐고 묻기에

꼭 가야하니? 안가면 안 될까?”

왜냐면 평일 날이고 도서관 일을 빠질 수가 없어서 망설이고 있었는데,

상록이가 안와도 된다면 사실 안 가려고 했는데...

그럼 오지마세요, 라고 말은 하지만 얼굴 가득 섭섭하다는 뒷말이 쓰여 있었다.

학교 다닐 때 학교 한번 가지 않았고,

용돈도 일주일에 만원 주기로 해놓고 이 주일에 만원씩 주었고,

별명이 딴 바지 없어로 놀릴 정도로 옷이 없어도,

메이커 운동화를 사주지 않아도 섭섭하게 여기지 않더니

입대 하는 날 가지 않을 듯 했더니 많이 섭섭하게 여겼다.

 

도서관측에 얘기를 하고 두 시간 늦게 출근하기로 하고 의정부 부대까지 갔다.

먼지 풀럭풀럭 날리는 부대 안엔 부모는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 친구들까지

입대하는 얘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내가 안 갔으면 상록이가 많이 쓸쓸하고 허전했을 것 같다.

벌써부터 우는 아들과 엄마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우린 덤덤하게 농담도 해가며 벤치에 앉아 사진도 찍고 밝게 웃어주었다.

상록이도 나도 울지 않았다.

한번 꼭 안아주고 보냈다. 오는 길에도 울지 않았다.

 

청아가 울지 않았냐고 묻기에.

간과 심장이 튼튼한 것처럼

뭘 울어 남들 안가는 거 가니? 어차피 가는 거 제때 얼른 다녀오면 좋지, 해버렸다.

사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몇 달 전부터 예고된 일이기에 맘 편히 보내기로 했다.

그 일에서 벗어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듯이 말이다.

저기 북쪽이 엄청 수상하고 무지 얄밉고 생각할수록 못된 인간이 있어서

결코 즐겁지는 않지만...

, 대한민국 아들 누구나 가는 길이기에 씩씩하게 보내주었다.

 

어떤 친구가 그랬다.

난 편하고 좋더만. 밥 주지, 깨워주지, 옷 주지, 용돈주지, 허튼짓 못하게 잡고 있지

얼마나 속편한지 몰라. “

난 그 정도는 아니지만 어차피 갈사람 시원하게 보내주고,

보내고 나니 가슴이 허전한 그런 기분이랄까?

집도 텅 비어 있고, 너무 조용하다. 인적 없는 공터에 서 있는 것 같긴 하군.

 

며칠 뒤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문자가 왔다.

이상록이병은 25사단에서 신병교육 중. 육군본부

그 문자를 보니 눈물이 자꾸 나왔다.

눈물을 그치려 멀리 창밖을 보았다.

둥불 같은 목련은 불이 꺼져 어두워지고, 대신 벚꽃이 환하게 피었군.

저기 과수원 밭에 휘청이게 핀 꽃은 무슨 꽃인가? 살구꽃인가?

괜히 꽃만 찾고 꽃 생각만 주저리주저리 했다.

버스에서 내려 도서관으로 씩씩하게 걸었다.

뜰에 피어있는 냉이 꽃도 꽃다지 꽃도 보고, 가던 길을 멈춰 제비꽃도 보았다.

이렇게 두 번째 봄이 오면 상록인 제대를 할 거야.

대한민국 사나이가 되어서 돌아오겠지.

 

입대할 때 입고 갔던 옷이 택배로 왔다. 편지 한통과 함께.

눈물이 조금 나오다가 재미있고 씩씩하게 쓴 편지를 보니 눈물이 멈췄다.

늙어도 예쁜 엄마에게 라고 써서 눈물이 안 나왔나? ㅋㅋㅋ

 

좋은 아빠가 되겠다는 상록아~~

대한민국 군인이 되어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것도 좋은 아빠가 되는 과정이란다.

사고 없이 잘 다녀오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