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들 상록이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보았다.
“좋은 아빠가 되는 거요.” 일초도 망설임 없이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뭐? 정말? 푸하하하”
웃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좋은 아빠가 되는 게 얼마나 힘든 건데요, 한다.
웃는 걸 멈추고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긴 하다.
좋은 아빠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다는 걸
우리 식구는 경험자이기 때문에 알고도 남는다.
일본에 있는 딸 청아에게 이 말을 해 줬더니
청아도 나랑 똑같이 수화기를 떨어트릴 정도로 크게 웃었다.
“정말? 그럼 난 좋은 고모가 돼야지, 엄만 좋은 할머니가 되면 되겠다. 음하하하하”
청아는 독신주의자가.
결혼하지 않고 자유롭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하면서 편하게 살고 싶다는데,
상록인 정반대로 좋은 아빠가 되고 싶어 한다.
극과 극인 정신상태지만 둘 다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가고, 그 꿈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상록이가 저번 주에 나라의 부름을 받아 군에 입대를 했다.
입대하는 날 의정부 부대까지 올 거냐고 묻기에
“꼭 가야하니? 안가면 안 될까?”
왜냐면 평일 날이고 도서관 일을 빠질 수가 없어서 망설이고 있었는데,
상록이가 안와도 된다면 사실 안 가려고 했는데...
그럼 오지마세요, 라고 말은 하지만 얼굴 가득 섭섭하다는 뒷말이 쓰여 있었다.
학교 다닐 때 학교 한번 가지 않았고,
용돈도 일주일에 만원 주기로 해놓고 이 주일에 만원씩 주었고,
별명이 딴 바지 없어로 놀릴 정도로 옷이 없어도,
메이커 운동화를 사주지 않아도 섭섭하게 여기지 않더니
입대 하는 날 가지 않을 듯 했더니 많이 섭섭하게 여겼다.
도서관측에 얘기를 하고 두 시간 늦게 출근하기로 하고 의정부 부대까지 갔다.
먼지 풀럭풀럭 날리는 부대 안엔 부모는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 친구들까지
입대하는 얘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내가 안 갔으면 상록이가 많이 쓸쓸하고 허전했을 것 같다.
벌써부터 우는 아들과 엄마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우린 덤덤하게 농담도 해가며 벤치에 앉아 사진도 찍고 밝게 웃어주었다.
상록이도 나도 울지 않았다.
한번 꼭 안아주고 보냈다. 오는 길에도 울지 않았다.
청아가 울지 않았냐고 묻기에.
간과 심장이 튼튼한 것처럼
뭘 울어 남들 안가는 거 가니? 어차피 가는 거 제때 얼른 다녀오면 좋지, 해버렸다.
사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몇 달 전부터 예고된 일이기에 맘 편히 보내기로 했다.
그 일에서 벗어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듯이 말이다.
저기 북쪽이 엄청 수상하고 무지 얄밉고 생각할수록 못된 인간이 있어서
결코 즐겁지는 않지만...
뭐, 대한민국 아들 누구나 가는 길이기에 씩씩하게 보내주었다.
어떤 친구가 그랬다.
“난 편하고 좋더만. 밥 주지, 깨워주지, 옷 주지, 용돈주지, 허튼짓 못하게 잡고 있지
얼마나 속편한지 몰라. “
난 그 정도는 아니지만 어차피 갈사람 시원하게 보내주고,
보내고 나니 가슴이 허전한 그런 기분이랄까?
집도 텅 비어 있고, 너무 조용하다. 인적 없는 공터에 서 있는 것 같긴 하군.
며칠 뒤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문자가 왔다.
“이상록이병은 25사단에서 신병교육 중. 육군본부”
그 문자를 보니 눈물이 자꾸 나왔다.
눈물을 그치려 멀리 창밖을 보았다.
둥불 같은 목련은 불이 꺼져 어두워지고, 대신 벚꽃이 환하게 피었군.
저기 과수원 밭에 휘청이게 핀 꽃은 무슨 꽃인가? 살구꽃인가?
괜히 꽃만 찾고 꽃 생각만 주저리주저리 했다.
버스에서 내려 도서관으로 씩씩하게 걸었다.
뜰에 피어있는 냉이 꽃도 꽃다지 꽃도 보고, 가던 길을 멈춰 제비꽃도 보았다.
이렇게 두 번째 봄이 오면 상록인 제대를 할 거야.
대한민국 사나이가 되어서 돌아오겠지.
입대할 때 입고 갔던 옷이 택배로 왔다. 편지 한통과 함께.
눈물이 조금 나오다가 재미있고 씩씩하게 쓴 편지를 보니 눈물이 멈췄다.
늙어도 예쁜 엄마에게 라고 써서 눈물이 안 나왔나? ㅋㅋㅋ
좋은 아빠가 되겠다는 상록아~~
대한민국 군인이 되어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것도 좋은 아빠가 되는 과정이란다.
사고 없이 잘 다녀오너라.~~